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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Feb 04. 2022

2년, 소설 한 편 쓰겠다고 꾸역꾸역

[독립출판記]


경희대학교에서는 매년 두 번 “경희꿈도전장학금” 장학생을 선발한다. 2021-1학기에는 코로나로 다소 인원을 축소해 뽑았고, 자유주제, 창업, 연구로 지원 분야를 한정했다. 나는 자유주제로 300만 원 장학금을 신청했다.


활동계획서는 총 10장을 작성해야 했다. 


나의 꿈, 구체적 진행 계획, 예산 사용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작성하는 과정에서 <화니단로 여행자들>을 완성해 책으로 만드는 일뿐 아니라 출판사 창업, 팟캐스트 제작, 홍보 영상 제작, 텀블벅 프로젝트 제작 등을 기획할 수 있었다. 


장학생으로 뽑히기 위해 거창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10장의 계획서를 쓰며  창작물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다. 




면접은 2:2 였다. 1차가 되고 나니 절실해져서 계획서를 몇 번이고 보며 예상 질문을 뽑았다. 


면접장에서 한 교수님은 내 프로젝트에 대해 질문을 하다가 “등단 먼저 하지…”하고 말했다. 팟캐스트니, 텀블벅이니, 유튜브니 그런 소리가 다 부질없다는 말투였고, 일순 비참해졌다. 나도 등단을 하고 싶었다. 안 됐을 뿐이다. 


교수님께 면접장에서 들었던 말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내 프로젝트를 무시하는 실체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5월에 합격 통보를 받았고, 5월에는 원고의 절반이 완성된 상태였다. 5/28일 통장에 100만 원이 입금돼 있었다. 돈을 받으니 당장이라도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불안감으로 열심히 썼다. 


장학생들은 중간보고서를 7월에 한 번, 최종보고서를 1월에 한 번 더 제출해야 했다. 


7월 무렵 시험 기간이 겹쳐 글쓰기에 완전히 지쳐 버렸고, 장학금은 이미 받았으니 대충 글을 마무리해 조용히 책을 만들고 쉽게 끝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7월에 중간보고서를 쓰며 <화니단로 여행자들>을 완성해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지원금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 기성 작가들도 마감이 있어야 쓰듯이 나도 마감 기한을 스스로 찾아 나서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원고를 9월에 마감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원고 마감을 11월에 했다. 계획대로였다면 두 달 동안 텀블벅 기획과 표지 아티스트 구인, 내지 편집, 굿즈 제작과 홍보를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모든 과정을 몇 주 안에 해결해야 했다. 


모든 일정을 쫓기며 소화했던 건 원고 마감이 늦어서다.


사실 원고는 계속 붙들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썼다고 해도 계속 고칠 문장과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 최종 마감을 할 때까지 계속 퇴고를 거쳤다. 


2020년 1월 <화니단로 여행자들> 초고를 구상했고, 2022년 1월 탈고했다. 


2년 동안 느꼈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막막한 느낌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원고를 마감한 이후로 막혔던 물이 뻥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새 소설 쓰기든, 소설쓰기 이외의 다른 도전들이든. 그동안 <화니단로 여행자들>을 쓰며 너무 꽉 막혀 있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갔으니 한발 앞으로 나아간 거라 믿고 싶다. 


완성 자체로 의미가 있어서인지 완성된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에 대한 생각에서는 점점 자유로워졌다. 


독립출판 지원 사업이 다양하게 많다.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는데 몇 년이고 아이템을 미뤄두고 있는 작가님들은 지원사업에 도전해 스스로 마감을 찾아나서도 좋겠다.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결국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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