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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새 Aug 10. 2021

키자니아와 디즈니랜드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어야 하는 곳 | 돈 주고 덜 뛸 수 있는 곳

백번을 망설이다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맘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할 것이 뻔한 코시국에 2주 격리와 코로나 검사 4번까지. 이미 2차까지 백신 접종을 했음에도 가지 말하야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럼에도 너무 그리운 부모님과 한국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때 다녀오기를 백번 잘했다 싶은 한국 방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지인 키자니아 방문기를 정리해본다. 


친구가 처음 키자니아를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오케이를 한 것은 키자니아에 대한 내 오해 때문이었다. 아직 들로 산으로 놀러만 다녀본 아이에게 직업의 다양성에 대해 가르쳐주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키자니아에 입장하고도 두어 시간은 헤맨 끝에 그것은 완벽한 오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10시 오픈이니까 9시 반에 만나~


오픈 시간보다 약간 일찍 만나기로는 했지만, 아이와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도착했다. 9시부터 줄을 서 있다가 입장했을 어린이들이 로비에서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입구를 찾아 슬그머니 입장했다가, 보딩 패스와 체험 팔찌 등을 받아왔어야 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모든 것이 예습 부족이었다. 예습이 필요한 줄도 몰랐던 우리는 이미 늦은 도착 시간에 어영부영 시간을 더해 10시 30분이 넘어서야 키자니아에 입장하게 되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 하나는 이미 입장을 해서 두 번째 타임인 10시 반 체험을 시작한 후였다. 입장할 때 나눠준 A4용지 한 장의 빡빡한 시간표는 모든 체험의 일정이 쓰여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운영되지 않는 체험들도 있었고, 번갈아 가며 운영되는 체험들도 있었다. 텅텅 빈 키자니아 골목에 서서 지도와 시간표를 해독하며 나는 그제야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키자니아 컨셉 자체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나이 대비 한글도 서툰 아이에게 그 질문은 참 의미 없었다. 이미 같이 체험하기로 한 친구들과는 1,2층으로 나눠 흩어져서 각자 멘붕을 겪고 있었다. 모닝커피 수혈이 필요한데, 어딘가에 애들을 넣어야 하는데, 도통 어디에 넣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11시가 되기 5분 전부터였다. 한가롭게 조용하던 골목에 아이와 손을 잡고 뛰는 엄마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엄마와 아이들은 그야말로 전속력을 다해서 뛰고 있었다. 빈 의자를 찾아 앉아서 시간표와 지도 탐구만 10분 넘게 하고 있던 우리는 뛰어가는 엄마와 아이들을 보면서 어디로 왜 뛰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모두가 뛰어가야 하는 곳이 있고 우리만.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초조한 느낌을 받았다. 


한발 늦은 것 같지만 일단 아이를 친구와 함께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동화 컨텐츠 창작소에 넣고 나서야 크지도 않은 키자니아를 한 바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11시 체험들이 모두 시작한 현재, 조용한 듯 보였지만 아이들이 7~8명씩 빼곡히 앉은 체험장들이 제법 많았다. 햄버거 카페테리아, 라면 연구 센터, 소방서와 운전면허 시험장 등은 11시 반과 12시 체험까지 모두 마감된 상태였다. 어떤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직접 그 체험장 앞에 줄줄이 앉아 체험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모든 체험은 4~10명 정도의 인원 제한이 있는지라 정말 원하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의 기다림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시간표에 대부분 30분이라고 쓰여 있는 체험 시간은 실상 20분에서 25분 정도였고, 그 자투리 시간은 다음 체험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 30분마다 전속력으로 뛰는 엄마와 아이 커플들이 복도를 가득 매웠던 것이다. 체험장 앞에서는 5초의 시간차로 30분의 차이가 발생했고 그러다 보니 지하철 자리를 맡듯이 아주 약간 먼저 달려간 엄마의 가방이 아이가 앉을 스팟에 던져지는 일도 허다했다. 엄마들의 빠릿빠릿한 에너지에 기가 죽었다. 


우리만 빼고 다른 엄마들은 이미 커피를 마시고 들어왔나 봐!!

그나마 코로나 시대의 평일 오전이라 우리 아이도 인기 없는(?) 체험관을 중심으로 두 개를 연이어 다녀오니 벌써 12시가 되었다. 이제 겨우 두 개 체험했을 뿐인데 지친 느낌이라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지만 의외로 카페테리아는 한산했고, 뭐라도 먹으니 좀 힘이 났다. 키자니아에 입장한 지 2시간 만에 만나기로 했던 세 아이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앉았다. 나와 친구들은 부족했던 전의를 불태우며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보자고, 그래서 우리가 커피 마실 시간을 꼭 확보해 보자고 모의했다. 각자 체험하느라 얼굴도 못 마주한 아이들이 함께 정한 다음 체험지는 햄버거 카페테리아. 서둘러 점심을 먹여서 후다닥 달려갔으나, 겨우 다음다음 타임의 끝에서 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는 세명. 자리는 두 개. 바디 블로킹을 하며 우리 애들 앞자리를 기어이 자기 아이에게 내어준 젊은 엄마가 원망스러운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결국 한 아이가 엄청나게 다운된 기분을 느끼며 다른 체험장으로 마지못해 떠날 때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 앞의 누군가가 인내심을 버리고 이 줄 서기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리고 이렇게 굼뜨면 우리 아이들 세명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함께 체험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지독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세 아이가 함께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한 곳에 30분 이상을 앉아 기다리게 하자고 작전을 바꿔 보았다. 남들이 뛰니까 우리도 함께 뛰어 보기를 여러 번 실패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2년 만에 만난 아이들이 다소 어색할 수 있겠지만, 너희들도 너희들끼리 놀아. 엄마도 엄마 친구들이랑 커피 좀 마시고 올게. 세 아이를 비타민 연구소 앞에 앉혀두고 키자니아 내에 유일한 노 키즈존인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앉으니 피로감과 성취감이 몰려왔다. 피 같은 시간에 노 키즈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건 우리 셋 밖에 없었다. 친구와 키자니아에 가기 전에 헐렁한 마음으로 "대충 서너 시까지 있으면 되겠지?" 했던 그 시간이다. 자꾸만 둘씩 하나씩 찢어지느라 아이 셋이 함께하는 체험도 없었고, 키자니아의 간판 같은 체험은 근처에도 못 가봤고, 그동안 번 돈으로 백화점도 들러야 한다는데 그마저도 오픈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지금 집에 가면 키조라고 쓰인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만 가지고 돌아갈 각이다. 직업의 다양함을 체험해보며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 하나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기까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엄마의 원대한 바람은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다. 아이는 다음 체험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잘 모르고 일단 줄을 서게 되었고, 체험을 하고 나서도 햄버거를 1시간 이내에 먹어야 한다는 안내 따위를 소중하게 머릿속에 간직하고 나왔다. 남들 다 햄버거 만드는 체험을 하고 그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을 때, 한산한 카페테리아에서 내 돈 내산 점심을 먹고 햄버거 만드는 체험에 들어갔으니, 우리는 참 전략도 전술도 뭐도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줄을 선 곳은 그 간의 직업 활동으로 모은 키조를 가지고 쇼핑을 할 수 있는 백화점이었다. 백화점마저도 30분만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아이들만 줄을 서서 들어갔다. 아이들이 각자의 키조가 얼마나 모였는지 분주히 계산을 하고, 어영부영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눈으로 고르는 중이었다. 느슨하게 줄을 서 있는 세 아이들 사이에 낯선 아이가 새치기를 해서 섰다. 나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아이에게 가서 이야기했다. "여기 애들이 먼저 와서 서 있었거든?!" 내 아이보다도 두 살은 어려 보이는 아이였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백화점에 조금 늦게 들어가서 별 것 아닌 아이템 고르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아니, 혹시 그 아이에게 양보하고 우리 애가 백화점에 못 들어간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제 겨우 키자니아 시스템에 젖어들었다고 정신승리 하기에는 내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바디 블로킹 젊은 엄마와 동급으로 빠릿빠릿한 에너지를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었구먼.


뭐가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말이 직업 체험이지 어린이 테마파크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도 이렇게 남들이 뛰면, 나도 같이 뛰어야만 하는 이 효율을 추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 해지는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조국의 시스템적인 빠릿빠릿함에 낯선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랬지. 내 나라는 참 사람들을 열심히 살게 하는 곳이었지.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30년 넘게 내가 살아오던 방식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만약에 키자니아가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 미국이라면 전반적으로 보다 대놓고 더 상업적으로 변신하고,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질 것 같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레고랜드 등의 테마 파크에는 어김없이 Priority pass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모두가 줄을 서서 타는 어트렉션에 별도의 입구로 (심지어 이 입구가 모두에게 매우 잘 보인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상관없이 먼저 입장할 수 있다. 이것이 엄청난 VIP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보통의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보통의 어떤 사람들도 그날만큼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Flex 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 그곳에서의 매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다. 테마 파크에 딸린 리조트에 숙박을 하면 일반인들이 입장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입장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픈 시간을 기다릴 때,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던지, 유니버설 최고의 어트렉션에 가서 먼저 줄을 서서 1등으로 탈 수 있다. 한 가지 어트렉션을 깊게(?) 즐기기 위해서 꼬마 숙녀들을 위한 뷰티 살롱도 존재한다. 헤어 스타일부터 화장, 네일 케어에 공주 드레스를 입혀주고 공주님과 만나 자매 사진을 찍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 또한 줄 서기 생략은 기본이다. 


모두가 뛰는 것이 아니라, 덜 뛸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물론 대가는 돈. 미국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사회 곳곳에 더 대놓고 돈이 더 민낯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선택을 세분화한다. 돈이 노력을 대놓고 대신하는 경우가 정말 정말 많다. 한국에서는 돈으로 대놓고 해결해서는 안 되는 것이 (미국과 비교하면) 제법 많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기부금 입학이 대놓고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잔디 깔고 들어왔다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만 떠돈다. 그게 나쁘다 좋다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미국 생활 6년. 아직은 한국과 미국의 모든 다름에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비교해가며 이해하는 게 재미있는 정도라 내 입장은 현재 중간 어드메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장점만 있는 법도, 단점만 있는 법도 없다는 게 나의 세계관 중심 축이다.


키자니아에서의 경험에 대해 한국의 친구들에게 구구절절 늘어놓았더니 대부분 "니가 어리버리했네." 하는 반응이다. 거기에 놀라운 뒷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되었다. '키자니아 알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키자니아에 데려가서 1일 보호자 역할을 하며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하는 알바란다. 경험과 노하우에 더해 확실한 목적의식까지 있는 그들을 예습도 없이 커피 마시러 간 나 같은 아줌마가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유독 빠릿빠릿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진 젊은 엄마들은 사실은 알바였었나 생각하며 허무하게 이 경험을 마무리했다. 미국에선 공식적으로(?) 돈이 통한다면, 한국에선 또 비공식적으로(?) 돈이 통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미리 알았다면 나도 키자니아 알바 Flex 하고,
2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키자니아 밖에서 커피 마실걸....



허무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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