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기
"김책임, 나 개발팀 M상무인데. 오늘 회의 회의록 썼나?"
매달 사업부장이 주관하는 디자인 회의가 끝나고 나면 각 부서 상무님들의 전화가 종종 오곤 했었다.
대기업의 특성상 모든 부서의 책임자들이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 모여 논의를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월간 회의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그 시간에 일어난 일들과 발언들은 훗날 성공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증거 자료로 쓰이게 된다. 부서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자신들의 부서에 중요한 이슈가 행여라도 빠지거나 더해질까, 각 부서의 부서장들은 회의록에 민감하다.
회의록을 쓴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많이 별 것인 일이었다.
호탕한 성격으로 유명하신 디자인 센터 대세 중에 대세, K상무의 비서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경력 사원으로) 입사한 지 몇달 되지 않아서였다. 상무님이 나를 급하게 호출한 이유가 내가 방금 보낸 '회의록' 때문이었다는 것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김 선임은 뭐 하는 사람이야!!!!!!!!!!!!!!!!!!!!!!!!! 회의록을 내 허락도 없이 보내다니. 제정신이야????!!!!!!!!!!!!!!!!!!!!!!!!"
재떨이만 날아오지 않았을 뿐이지, 상무님의 불같은 샤우팅은 파티션 너머에서 일하고 있는 백명도 넘는 사람들이 듣기에도 충분한 대시벨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사회생활 5년 차에 자잘한 실수도 했더랬지만, 그렇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 같은 화를 우산도 없이 고스란히 맞아보기는 처음이었다.
200개도 넘는 눈들이 뜨겁게 나를 주시하는 가운데, 상무님 방을 나오고 복도를 지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기까지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나는 무슨 그렇게 큰 죽을죄를 지었는가. 온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도 세상에 감사할 것 같았다. 나는 이토록 쓸모없는 인간인 것인가.
5년 차에 걸맞은 좌절과 5년 차에 걸맞은 인내심으로, 속은 너덜너덜 겉으로는 꼿꼿한 등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선임 잘못이 아니야. K상무님이 화내는 대상. 김 선임이 아니야.
진짜 화를 쏟아부을 사람에게 화를 낼 수가 없어서, 김 선임에게 대신 낸 거야."
시커먼 얼굴에 걸걸한 목소리. 솥뚜껑 같은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 주시며 K수석이 위로를 건넸다. K수석은 만인이 인정하는 K상무의 왼팔이었다. 비주얼리 K상무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 K수석은 항상 화가 난 듯한 표정과 분석적이고 날카로운 평가로 디자인 품평회를 살얼음판으로 만들곤 했었다.
그런 사람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어깨를 두드리지는 않았지만,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따듯하게 두드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송하자마자 나에게 그 난리를 겪게 만든 그날의 회의록은 사실 J상무의 컨펌을 받은 상태로 보내진 것이었다. K상무는 여러 조직을 수하에 거느린 곧 전무가 될 대세 상무였고, J상무가 이끄는 우리 조직도 그중에 하나였다. 당시 J 상무는 틈만 나면 우리 조직을 분리시켜 K상무 손을 떠날 궁리를 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내가 보낸 별 것 아닌 회의록에는 그날의 디자인 결과물이 J상무의 공이라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담겼던 것이다. 부르는 대로 받아 적는 햇병아리 김선임이 알 턱이 없었던 정치 관계는, 그렇게 김선임의 손으로 쓴 회의록에 고스란히 담겨, 사업부장님 이하 모든 유관 부서에 널리 널리 보내졌던 것이다.
10년도 지난 세월과 K수석의 배려 덕분에 이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
아이 앞의 나에게서 K 상무의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낮버밤반
아이를 낳고 육아가 시작되니 '낮에는 버럭 하고, 밤에는 반성하는' 시간이 자주 찾아왔다.
하루 종일 넘치는 아이의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제발 빨리 자라. 빨리 자라. 를 되뇌며 밤 시간을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버럭버럭 짜증을 쏟아내며 내 안의 미친ㄴ을 쏟아내는 것은 특히 아이와 나. 단 둘이 있을 때이다. 드디어 난장판이 된 집안에 고요함이 찾아오고, 정리되지 않은 바닥은 내일 또 반복될 테니 치우기를 생략한다. 티비를 켜고 맥주 한 캔을 따며 휴식을 시작한다. 드라마나 한편 보고 자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핸드폰 안의 아이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그냥 궁금한 게 많은 아이인데.
에너지가 넘칠 뿐인 건데.
또 나는 버럭하고 말았구나.
사실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화가 난 내 앞에 있는 대상이
연약한 아이. 그 아이 하나라서 화를 낼 때가 있다.
비겁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다시 반복하게 될 비겁한 나의 버럭.
살다 보면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
내가 잘못을 했을 때에도.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아이가 커서 언젠가 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화를 퍼부어대는 사람이 있더라도, 아이가 스스로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엉뚱한 화를 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니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K 상무와 니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K 수석은 한 사람이다.
낮버밤반 하는 당신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
니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당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엄마가 엄마에게 화가 나서 너에게 화를 낸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얘기해주는
당신이다.
[ 표지 사진 출처 ] https://pepnewz.com/2018/01/03/morally-good-kind-p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