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비자발적 자아 성찰
어느새 2년.
끝나지 않았지만, 약간 끝이 난 것 같은 느낌의 코로나 세상.
사람이 사람에게 옮긴다는 이 지독한 역병은 우리에게 어느 날 예고 없이 물리적인 구속과 시간적인 자유를 동시에 선사했다. 가급적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가족'이라고 불리는 최소한의 사람들과만 접촉하라 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단체 활동은 최소화되었고 은근히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갔던 경조사들이 사라졌다. 가능한 일도 집에서 하라고 한다. 저녁에만 모여 각자 하루 일과 이야기하기도 바빴던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눈 뜨는 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 차를 탈 일도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 보니, 갇혀있지만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좀 갇혀있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Back to normal할 줄 알았다.
보이지 않는 승자들이 생겨났다.
족보를 타고 올라가 보면, 어쩌면 양반의 후예들 일지 모르는 집 순돌이들. 뼛속까지 한량 DNA가 박혀 있어,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생활이 많이 다르지 않은 이들. 아니, 바뀐 생활이 더더욱 정서에 맞는 이들.
그들은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집에 박혀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으르고 바쁘게 지낼 수 있었다. 가끔씩 은둔형 외톨이 프레임의 씌워져 사회적 패자처럼 불리는 게 마음 불편했다. 그렇지만 괜찮다. 나는 행복하니까.
내일모레 일정이 하나 생기면 오늘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그 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알아본다. 나간 김에 만나야만 했던 사람을 만나고, 나간 김에 필요했던 것을 사 온다. 나간 김에 미뤄뒀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이어지는 며칠 간의 '안 나가도 되는' 날들을 확보한다. 나가면 또 나름으로 좋은데, 나가기 전까지의 시간들이 마음 피곤하다. 주말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면 돌아오는 주말은 쉬어줘야 한다. 내 에너지의 원천은 우리 집 소파와 침대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기가 빨린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있는 곳이라면 피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패자들도 생겨났다.
홍반장 정신으로 똘똘 뭉친 에너지 부자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옆집, 경비 아저씨, 환경 미화원 아줌마까지 모두와 인사하는 그들. 그들은 보통 인싸라고 불린다.
그들은 토요일 하루를 집에 있었다면 일요일엔 꼭 나가줘야 한다. 계획이 없는 주말은 상상할 수가 없다. 혼밥을 대체 왜 먹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옮긴다는 이 역병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사람 구경이라도 해야겠다며 집을 나선다. 밥을 먹더라도 어디 한강에라도 나가서 뻥 뚫린 바람을 느끼며 사람 구경을 하며 먹고 싶다. 이 와중에 마스크를 썼기에 제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이 밝고 명랑한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표현해야 한다. 나의 이 반가움 마음을 저 친구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홍반장 눈빛을 발견하면 먼저 다가간다. 입 안이 말라 붙어버릴 것 같은 이 상황이 답답한 너랑 나랑 오늘부터 1일. 친구 하자고.
이 역병은 절대적으로 홍반장 정신에 불리했다. 꼭 그렇게 집을 나서야만 하냐고, 그냥 가만히 집에서 가족들과 숨만 쉬며 지내는 게 어려울 일이냐고, 너는 그렇게 1차원적인 인간이냐고. 확률적으로 집안이 좋아서 집안에만 있었던 사람들은 덜 걸리는 추세였으니 초기에는 그 비난의 정도가 더했었다. 국가적인 동선 공개로 망신을 당하고 세상 이기적인 사람 취급을 받았다. 불과 2년 전 일상에서는 인싸로 추앙받았던 나 님들인데 세상 너 이렇게 갑자기 바뀌기 있니 없니.
갑자기 집 순돌이들의 가치가 상승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더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루가 너무 길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에 있으라니까 집 잘 지키고 있고, 집에서 하는 취미도 엄청 많은 그들.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백만 가지이다. 요리도 하고, 못 본 드라마랑 영화들도 봐야 하고. 피아노도 치고, 수세미도 뜨고, 그림도 그리고, 헬스장 안 가도 되니 돈 굳었다며 홈트도 시작한다. 조금 게으르게 누워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세상 평화롭다. 세상 쿨한 그들이다.
이 시기를 지나오며 스스로를 재정의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스스로 밖에서 에너지를 얻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비자발적으로 집에 있어보니 이게 또 세상 편하고 좋았던 사람들도 있을 거다. 사람들 만나는 거 기빨려서 모임 같은 거 생기면 전날부터 스트레스받던 사람이 비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못 만나게 되니 몸이 베베 꼬이고, 사람들이 그리워진 경우도 있을 테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모임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같이 노는 것을 즐겨했었다. 그런 만큼 다른 집에 초대되어 가는 경우도 많았고,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여행도 다른 가족들과 많이 간 편이다. 가족 모두 박쥐 과라 쥐를 만나면 쥐처럼 놀고, 새를 만나면 새처럼 놀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음 여행을 계획했고, 잠잠하다 싶으면 사람들을 초대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게 좋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쾌했다. 그런 우리 가족이 셋이서만 1년 반을 우리끼리 꽁냥거렸다. 함께 멸치 똥을 따고, 스콘도 만들고, 김치와 자몽청을 담갔다. 아이는 영어로 나는 한국어로 해리포터를 읽고, 함께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이 덜 붐빌 시간을 선택해 하이킹을 자주 가고, 어설프지만 골프를 같이 쳤다. 천체 망원경을 사서 달을 관찰하고, 그림을 함께 그리고,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우리만의 캠핑을 즐겼다. 피차 집을 지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영상 전화를 자주 걸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참 많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상하네. 사회적 동물인 줄 알았던 나. 이 생활에도 적응이 되긴 되네? 나도 혹시 한량 DNA를 가진 양반의 후손이었나. 현대 사회가 내 정체성을 감춰버렸었나.
1학년이었던 아이가, 1년 5개월 만에, 3학년이 되어 학교를 갔다. 개학을 계기로 두어 달쯤 큰 일 없이 이전의 생활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고민하고 고민하며 만나던 띄엄띄엄 친구들을 고민하지 않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만나기 시작했다. 문화생활도 아이의 액티비티도 야곰야곰 다시 시작했다. 미래에 친구가 될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과도 살금살금 커피 타임을 가진다. 사회적 동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시간을 가진 후에는 휴식 시간도 충분히 가진다. 의식적인 건 아닌데 그냥 좀 호흡의 강약이 생긴 느낌이다.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더라도 친구는 친구라는 믿음. 필요에 의해서 만난 사람들과는 결정적인 순간에 위안을 얻지도 주지도 못한다는 진실. 만날 사람들은 결국 만나게 되고,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는 오래오래 뭉근하게 끓여 만들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쓰다 보니 나는 또 교집합 속의 인간으로 집순이에 붙었다가 에너자이저에 붙었다가 지맘대로 사는 인간. 그래서 이 위드 코로나 시대에 다시 한번 나의 삶의 방식을 선택.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선 인간이라고 결론지어 본다.
한량 DNA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고도의 사회화로 홍반장 정신을 지니게 된 박쥐과 인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