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가 아는 사랑이 다라고 생각했었다.
육아 선배들은 가끔 아이 몰래 휴가를 쓴다고 했다. 출근하듯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본인은 다시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 시간이 너무 갖고 싶어서, 남편에게도 친정 엄마에게도 비밀로 하고 그렇게 혼자 커피도 마시고 밀린 잠도 자고 목욕탕도 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말끔해진 모습으로 어린이집의 아이를 데리러 가면 저녁 내내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다가 외근에서 일찍 일이 끝냈을 때, 그녀들은 곧바로 집에 가려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시자고, 아니면 소소한 쇼핑이라도 하자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가지 않아도 친정 엄마가 살뜰히 보살펴주고 있을 내 아이가 보고 싶어 혼자 시간을 포기하곤 했다. 날이 밝을 때 귀가하는 날이면 지하철 역에서 우리 동까지 아파트 단지를 반쯤 뛰어갔다. 여름이 되어 해가 길어지니 그게 그렇게 좋았다. 가끔 저녁까지 다 먹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엄마, 아빠가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잠든 아이가 깰까 퇴근해 아이 얼굴도 못 보고 조용히 씻은 날이었다. 아이가 잠결에 울길래 가서 달래주는데, 어둠 속에서 나를 밀어내며 “할미~ 할미~”라고 울었다. 나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엄마보다 외할머니에게 익숙해져 가는 아이의 무의식을 들여다본 것 같아 울컥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같이 있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세상에 내가 아는 사랑이 다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뭐가 이리 절절한 모성애의 소유자인가.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진심으로 함께 고민하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의논할 상대는 남편뿐이었다. 다행히 우리 두 사람은 다 예상치 못하게 같은 호흡으로 딸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내 인생에 수많은 결정들을 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번 결정은 무게가 달랐다. 이번에는 ‘아니면 다시 하지 뭐.’가 없을지 모른다. 내가 이럴 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더 문제였다.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로 멋진 삶을 보여주겠다 생각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상황이 좋아서 더 고민이었지만, 아마도 상황이 좋음에도 고민이니 그게 더 문제였다.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복직을 해서,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꼬박 1년 4개월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돈’이 마지막까지 포기되지 않아서 내가 어른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돈’을 이긴 것은 ‘시간’이었다. 3살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것은 너무 명백했다. 98점짜리 워킹맘의 상황에서 1년을 넘게 고민했는데도, 여전히 고민이라면, 이건 찐인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