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고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자기-연민

by 리베르따

누구나 저마다의 자의식을 갖고 산다.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나와 너, 너와 나, 우리와 나를 구분하기 위해 자의식을 사용한다.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개성을 만들어주는 좋은 도구다. 반면에 너무 강해지면 문제가 된다.



자기혐오는 곧 자기 연민이다. 자기 연민은 또한 자기혐오다.


어린 시절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상처는 열등감이 되거나 슬기롭게 잘 극복한다면 개성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상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조차 손에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자기 연민에 빠진'사람들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하고 가엾다.


내 과거는 남들과 다르다거나 특별히 더 불행하다 여겨 아픔을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때로는 강요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이 그러하셨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그때마다 공감과 인정을 강요하셨다.

나르시시스트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어리고 가엾은 나', '참 열심히도 살았던 나'라는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한다.


연민에 젖어버린 과거를 계속 복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학대에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선조들의 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다. 학대당한 아이들은 성장하여 스스로를 학대한다.

고통이 부재한 삶은 묘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준다. 일평생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평온함이란 단지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기 전 신호탄과 같다.

잔잔한 일상, 자기 계발적인 삶, 따뜻한 사랑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다. 자기 학대, 고성과 폭력, 혐오와 무력감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것들이 부재하는 순간 원하던 원치 않던 좇는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


스스로를 타인으로 여겨라. 본인을 100% 통제할 수 있고 잘 안다고 자부하지 말아라. 감정이 원하는 대로 생기던가? 당장 아침잠도 조절하지 못해서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태반이다. 헬스장을 등록하고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안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이전보다 조심스럽고 신중을 기울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통의 경우 타인의 과거에 연민을 느껴 집작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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