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정보과잉의 역설

by 리베르따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전보다 정보를 접하기는 훨씬 쉬워졌다.
검색 몇 번,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답에 도달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구분해야 할 책임이 이제 개인에게 넘어왔다는 점이다.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사실 규명이 어려운 정보는 정제된 정보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많이 퍼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럴듯한 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유튜브를 예로 들어보자.
전등을 가는 법, 화장실을 청소하는 법, 하루 한 끼를 해결하는 레시피처럼 실생활에 꼭 필요하고 결과가 명확한 정보들은 유튜브가 아주 유용하다. 누가 알려주든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

하지만 투자나 의약품 복용법처럼 전문성과 책임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정보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일반인의 경험담이나 단편적인 주장으로 사실처럼 유통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한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정보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믿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다. 나는 기준이 필요한 정보에만 유튜브를 사용한다. 무료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찾을 때, 저녁에 먹을 레시피를 검색할 때처럼

출처와 목적이 분명한 정보에 한해서다.

그 외의 시간에는 고양이를 검색한다. 마음이 심란해질 때나 복잡해질 때 아무 판단도 필요 없는 정보를 통해 평안을 얻는다. 그것 역시 나에게는 용도가 명확한 정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같은 종목을 두고도 의견은 끝없이 갈린다. 기사도 넘쳐난다.
그래서 나는 출처가 분명한 자료, 기업의 재무제표나 공식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기준으로 나만의 투자 기준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기준을 세워두면 그 외의 정보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필요가 없다. 모든 말을 다 들어야 할 이유도, 모든 의견에 반응해야 할 의무도 사라진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미루는 존재가 된다. 무엇이 맞는지 알기 위해 계속 찾아보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기준은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중요한 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모든 정보를 이해할 필요도, 모든 주장에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건 정보가 아니라 경계선이다.
여기까지는 받아들이고, 그 너머는 흘려보내는 능력. 그 경계가 단단할수록 삶은 단순해진다.

생각은 줄어들고, 판단은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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