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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카보 Nov 19. 2019

집떠나와 미얀마로


 "미얀마가 어디지?"


미얀마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참여 제의를 받고 제일 먼저 든 의문이었다. 급하게 구글 지도를 열어 검색해 보니, 태국 근처 어딘가였다. 옆에 있던 선배 한명은 '범아'라고도 부르는 나라였고, 나 역시 최근 '아웅산 수지'라는 인물의 이름을 언론에서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그리 낯설진 않았으나, 그래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처럼 그리 친숙한 느낌의 동남아 국가는 아니었다.


 미얀마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를 결정하기 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둘째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제일 컷다. 다행히 친가와 처가 모두 인근에 계셨기에 함께 잘 지낼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으나, 일명 독박육아에 대한 미안함과 또 한창 귀여운 애들과 곁에서 시간을 못 보낸다는 아쉬움이 컸다. 단순히 지방으로 출장을 간다거나, 혹은 해외에 단기 출장을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 이였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체류해야 하는 일정이기에 여러 변수들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봐야 했다. 가족들과의 충분한 논의 끝에 미얀마 행을 결정했다. 막상 결정하고 나니, 출국 전 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업무 인수인계를 포함해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도 받고, 은행 업무도 해 두고 필요한 물품도 사고 또 당분간 못 볼 가족들과 짧은 여행도 다녀오고, 지인들과의 송별 식사도 하며 분주한 시간들을 보냈다.


 출국 당일이 되어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은 참 기분이 이상했다. 벌써 부터 출입구 심사대 안으로 들어갈 때, 눈 시울을 붉힐 아내가 걱정되었다. 출국 준비 기간을 분주히 보낸 탓에 실감이 잘 안났는데, 영종대교를 들어서고 비행기가 크게 보이기 시작하니, 코 앞에 닥친 현실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공항을 방문할 때는 여행을을 시작하는 설렘이 가득찼었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이런 느낌이 든다는게 참 낯설게 느껴졌다.  6개월이건 6년 이건 당장 오늘 밤부터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의 깊이가 다를수는 없었다.어려운 헤어짐의 공간을 지난 반투명 자동문으로 들어가서 출국 심사를 머쳤다. 혼잡한 면세점을 뒤로 하고, 조용한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미얀마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사오십대의 남자들이였다. 미얀마와 한국을 오가며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리고 중간 중간 단체로 미얀마로 여행이거나 혹은 선교를 떠나는 무리들도 보였다.  탑승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티켓을 확인하고, 입구에서 신문을 하나 골라 자리에 앉으니 당분간 못 맡을 고국의 공기를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서 인지, 비행기는 매우 조용했다. 비행기 타기 전에 보려고 꺼내둔 책 한권이 무색하게, 비행 내내 졸다가 착륙 안내 방송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해외 방문시마다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지만, 크게 다른 양식이 아닌데도 늘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감을 갖고 작성하게 된다. 이렇게 악필로 써도 되는 것일까. 미얀마행 비행기는 기체가 작은 탓에 착륙시 진동도 컸다. 뒷 바퀴가 활주로 지면에 닿을 때 그 진동이 온 몸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비행기 게이트를 나와 공항으로 들어서자 마자, 동남아 특유의 더운 공기가 코로 훅 들어왔다. 출국 전 기억해 둔 고국의 공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양곤 국제공항 전경

 양곤 국제 공항은 밤 시간이라서 그런지 참 조용했다. 동시에 도착한 비행기가 많지 않아 보였다. 한국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스님들이였다. 갈색과 주황색 톤의 승복을 입고 쪼리를 신고 계셨다. 공항이 고요한 탓에 작은 목소리도 굉장히 잘 들렸다. 미얀마에 오기 전, 접수한 팁 하나가 있다. 공항 입국 심사 시, 내국인 칸을 이용하라고 했었다. 미얀마 공항에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많기 때문에, 줄이 짧은 내국인 전용 입국 심사대를 이용해도 문제 되지 않는 다고 했다. 실제 그 팁을 활용하여 당당하게 내국인 전용 입국 심사대를 이용했는데, 그들도 당당하게 승인해줬다. 참 빨랐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나오자 미얀마 정통 의상으로 보이는 치마 같은 걸 두른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을 마중나왔는지, 다들 눈으로 "너 맞니?" 라는 사인을 강렬히 보낸다. 나 역시도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찾느라 두리번 거리고 나서,  현지인 직원을 만나 차에 탔다. 역시 차는 에어컨이 있어 시원했다. 주차장을 나와 도로로 접어들었는데 창 밖이 참 어두웠다. 밤이니 어두운게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만큼 가로등이 많지 않고, 또 사무실이나 상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공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둡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기에 차는 하나도 밀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마주한 숙소의 입구는 다소 충격적이였다. 사실 르와르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어두 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이끼가 잔뜩 낀 외관, 어두 컴컴한 엘리베이터 홀, 순간순간 느껴지는 곰팡이 향, 엄청난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까지......약간의 충격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갔을 때는 더 놀랐다. 방에 있는 침대 커버 색상에 놀라고, 또 모기장을 보고 놀랐다. 요즘에는 구하기 어려운 톤의 색 조합들, 그리고 모기가 얼마나 많으면 잠잘 때 이런 곳에 들어가서 자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내일 생활을 위해 간단히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숙소는 나를 포함 직원 4명이서 함께 사용하는 아파트였다. 듣기로는 월세가 $ 2,500인 숙소였다. 국내에서 월 250만 원 정도면 최고급 레지던스에 머물 수 있는데 반해, 이 곳은 가성비가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낯선 환경에서 잠은 쉽게 깊이 들지 않는다. 잠도 안 오는데 누워있는 게 괴로워서 일어나서 전등 스위치를 켰는데, 정말 까무러치게 놀랐다. 약 검지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전혀 도망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마뱀도 보였다. 이런 녀석들을 협오하진 않기에, 부디 갑작스레 나타나지만 말아주길 바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첫째 날 밤을 보냈다.

정갈하게 마련된 침대. 참으로 낯선 색들의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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