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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카보 Nov 19. 2019

Yangon 동네 산책

"해외 현장으로 가? 좋겠다. "


출국 전에 가까운 선배들에게 인사 드리러 가면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 때에는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 직장생활을 하며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출장 혹은 파견을 가는 것이 남들 부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우리 동기들 사이에는 '해외는 여행으로 갈 때 좋지. 일로 가면 피곤하기만 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실제 와서 일해 보니 심신의 피로도가 훨씬 크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가 사무실 가서 일하고 어둔 밤에나 다시 숙소에 와서 좀 쉬다 자고 하는 것이 일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에 딱 하루는 온전한 휴식이 주어졌다. 그래서 이 날 만큼은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내려 노력했었다. 


 Yangon에 와서 첫 번째로 맞은 주말 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 뭐하지?'였다. 단기간 체류가 아닌 탓에 급할 것도 없고, 아직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아 피로감이 있어 그냥 숙소에서 좀 쉴까도 고민했었으나, 낮에 누워 있어 봐야 그 피로가 풀리지 않을 것이기에 뭉개지 말고 바로 씻고 나가서 동네를 걸어보기로 했다. 아직 길을 잘 모르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니, 거리에 나가서 믿을 건 구글 맵 밖에 없었다. 날이 더우니 가벼운 반바지 차림에 배낭에 물병 하나, 아이패트, 노트와 펜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 중 하나는 '동네 걷기'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다리는 좀 아플 수도 있겠으나, 동네를 거닐며 이곳저곳 둘러보면 훨씬 그곳의 숨은 면면을 보다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가면 되도록 시간을 내어 동네를 걸어보려 노력한다.


Don't parking here for any reason

 처음 마주한 숙소 맞은편 벽에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미얀마 글씨를 알지 못하지만, 이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흰색 벽에 붉은 글씨로 가지런히 쓰인 글씨가 참 매력적이었다. 나중에 현지 직원에게 뜻을 물어보니, '여기 주차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그 말이 저렇게 긴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예쁜 글씨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길을 걷는 중에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보행자용 신호등이 거의 없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한 주변은 Pyay Road (삐로드)라는 양곤의 메인도로인데, 보행자용 신호등이 거의 없었다. 간혹 바닥에 횡단보도 표시가 있긴 했으나, 멈추기는 커녕 더 가속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태연하게 이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곤 했다. 신호등 자체가 몇 없으니, 무단횡단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또한 인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구간도 많았다. 임시로 측구를 만들고 위에 콘크리트로 짠 사각형 뚜껑들을 덮어놓은 곳이 많았는데, 이가 맞지 않아 심하게 흔들리는 곳도 있었고, 또 깨진 곳도 종종 있었다. 환한 낮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80년대의 서울도 이런 곳이 제법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한 가지 특징은 누워있는 강아지들이 참 많았다. 더운 나라에서 지내기 힘들었던 탓일까, 생사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를 풀고 누워 있는 녀석들이 많았다. 견주들이 준비한 옷을 차려입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반려견들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넌 고양이니? 강아지니?


 새로운 풍경들에 감탄하며, 한두 시간 가량 걸었을까? 깐도지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잘 갖춰 있었고,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로 인해 시원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리 걷기를 좋아해도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장시간 걸은 탓에 잠시 쉬어 생각도 좀 정리하고, 점심 겸 저녁식사도 해결할 겸 호수 주변 식당에 들어갔다. 미얀마는 '짯'이라는 화폐를 쓰는데, 우리나라와 거의 1:1 환율이기에 금액 계산을 하기 훨씬 수월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안 되는 국가인데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가격이 전혀 저렴하지 않다. 햄버거, 감지 튀김 그리고 탄산음료 세트가 만원 정도 하니,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물가다. 기왕 자리를 잡았으니, 2시간 동안 힘들게 들고 다닌 배낭에서 노트와 펜을 빼서 이것저것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가만히 앉아 호수가를 바라보며,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끄적이다가,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가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어디로 여행 가고 싶어?"

"난 특별히 가고 싶은 곳 없어. 어디든 그곳에서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는 게 가치 있는 것 같아."


 질문자의 의도에 벗어나는 크게 도움 안 되는 답이었겠지만, 실제로 내게 여행을 비롯한 새로운 경험이 주는 가치는 그곳에서 하는 생각들에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큰 기회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이 곳 낯선 나라 미얀마에 와 있는데, 그간 바쁜 일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삶의 진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울창한 숲 같은 깐도지 호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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