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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카보 Nov 23. 2019

영어공부 말고, 그냥 영어

공부가 목적인가. 소통이 목적인가.

미얀마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의 영어실력이였다. 나이가 드신 분들도 영어를 잘하고, 젊은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 미얀마가 과거 2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게 큰 이유라고 하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중고등학교에서 영어 뿐 아니라 수학을 배울 때도 영어로 배울 때가 많다고 한다. 


 우리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앞집 민원인도 영어를 잘하고,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미얀마 현지인들도 영어를 대게 잘 했다. 국내에서 일할때는 사실 영어 쓸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입사해서 몇 년간은 왜 취업할때 영어 성적을 제출하라고 한 것일지 궁금했다. 또한 입사 후에는 바쁜 일상 가운데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인지 하지 못한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막상 해외에 나와 일해보니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곳에서도 욕심으로만 끝나면 안될것 같아, 이런 저런 시도와 노력을 해 보기로 했다. 


그 노력이라는게 사실 대단한건 아니였다. 마음이 맞는 후배들 몇몇을 선동하여 하루에 다섯 단어와 예문을 암기해 보기로 했다. 선배의 말에 어쩔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동의했을 수도 있겠으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이런 사소한 시도도 하나의 휴식이 될 수 있었음에 잘 동참했던것 같다. 실제 하루 일과중에는 정신없이 분주하게 보냈지만, 그래도 숙소에서 머무는 저녁에는 다섯 문장 정도 암기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래봐야 한 15분 정보면 충분한 시간이였다. 개인적으로 저녁에 회식이 있는 경우, 다음날 점심 휴식 시간에 잠깐 노트를 펴놓고 암기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현지인 A 사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과장님. 왜 이런 영어 단어를 외우는 거예요 ?"

"아. 저도 영어 잘하고 싶어서요."

"정말요 ? 그런데 이런 단어는 잘 안쓰는 단어들이잖아요 ?"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였다. 나는 왜 자주 쓰지도 않을 단어들을 외우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런 목표도 전략도 없이 그냥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던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자 당황스러웠다. 참고로 현지인 A 사원은 언어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보이는 친구였다.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와 중국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였다. 특히 한국어는 유투브에서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고 했다. 민망함을 뒤로 하고, A 사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하는데......또 하고 싶은 언어는 없어요? 일본어는 어때요 ?"

"아 그럴생각 없어요. 일본 드라마는 재미없어요. 재미있으면 일본어도 해 볼텐데......"


머리를 한대 더 맞은 느낌이였다. 즐거운 취미를 즐기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보기에 쓰지도 않을 단어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 모습이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싶었다. 스펙을 쌓아야 가시적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 생존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핑계삼기에도 민망한 나이다. 영어는 그저 소통을 위한 하나의 언어로서 가치 있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턴가 나에게는 그저 학습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던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였다.


양곤 다운타운에 가면, 양곤시청사를 비롯해 미얀마 건축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2008년 12월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 때 캐나다 벤쿠버로 여행을 갔다. 다른 4학년들 처럼 졸업 후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 군에 임관할 예정이였기에 정말 부담없는 여행이였다. 관광지를 이곳저곳 둘러보는대신, 특별한 계획없이 조용하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지내보기로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현지에 머물로 있는 이들과 조우할 기회가 종종 생겼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나, 어릴적 이곳으로 이민을 온 한인들을 만나면서 하나 결심한게 있다. '영어 공부를 할게 아니라, 내 전공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놀고 먹는 애들도 나보다 영어를 잘 할 수 밖에 없는데, 전공이라도 이들보다 앞서야 뭔가 경쟁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영어 공부를 하는대신, 전공 공부를 영어로 하려고 노력했다. 따로 시간들여 영어 공부하지 말고, 전공공부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도 공부하는 그런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들었다. 그렇게 한 4~5년을 보냈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자 이 감각이 무뎌진것 같다. 


영어공부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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