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밀레니얼 세대의 너무 다른 어린 시절 :1994년 08월 23일 생 이슬기의 히스토리
나는 어릴 적부터 겁쟁이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그렇고, 실제로 주변에서 기억하는 내 모습도 그렇다. 어른의 눈을 잘 못 쳐다봤고, 친구는 언제나 어려웠다.
심지어 아기였을 때에도 난 유난스러울 정도로 소심했다. 엄마는 순했기에 좋다고 하셨지만. 너무나 고요해서 주변을 돌아보면, 쇼파 위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볼이 무거워 옆으로 퍽!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잠들었다는 아기가 바로 나다. 심지어 조금 아픈 날이면 집이 떠나가라 우는 대신, 쇼파 구석을 파고들며 잠이 들었다는 아기가 바로 나였는데, 지금 성격과 약간 유사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어른들에겐 모든 물음에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줄 모르는 숫기 없는 아이였고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는 날이면 방에 혼자 콕 박혀 놀곤 할 정도로 혼자가 편했다. 친구 집에 나를 잠시 맡기고 엄마가 날 두고 나간 날엔 창쪽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며 엄마를 기다렸다고.
그리고 나는 내가 아는 가정 중 가장 엄한 가정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호칭은 ‘어머니’, ‘아버지’였고, 어른들의 말엔 말대꾸해서는 안된다고 익히 배웠다.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양육 스타일도 다른 편이었다. 어머니는 칭찬은 절대 없이 부족함을 질책하는 훈장님 같은 스타일이었고(훈장님이 우리 엄마보단 칭찬을 많이 하실지도...), 아버지는 부족함 그 이상으로 엄청난 칭찬을 해주시는 '긍정왕' 아버지였다. 낮에는 혼났던 성적이 아빠 퇴근 후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바뀌어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떻게 해도 불만족스러워하는 엄마와, 미래에 기대를 거시는 아빠 사이에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도, 부모님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다른 동기를 가져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장을 갖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라 배웠고, 그렇게 했다. 내가 아는 방법을 다해, 나름 최선을 다하며.
그땐 몰랐다. 누군가 던진 말 한마디의 동기가 길을 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엄마의 기대는 너무 높아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았고, 아빠는 날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아빠 말은 믿을 수가 없었는데,
“슬기는 PD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앞집 이모가 해주신 말에, 처음으로 귀가 열렸다. 처음으로 내 성향과 역량을 파악해해 주신 말씀이라고 느껴졌다. 웃기게도, 난 그 이후로 신문방송학과를 향한 길만을 걸었다. 그리고 정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게 내가 지금 내 길을 걷게 된 계기고, 같이 살고 있는 룸메이트를 만나게 된 계기다.
이렇듯 누군가의 한마디는 인생의 큰 방향성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나를 형성하는 과거는 내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역사로 남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내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은 바뀐 내 모습을 보고 놀랄 정도로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