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임정은의 일대기
최근에 사촌 언니와 술 한잔하며 들은 이야기인데 중학교 때 언니가 내게 꿈을 물어봤을 때 “경리가 될 거예요. 먹고는 살아야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뭘 몰랐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경리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언니는 언론인의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을 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 PD라는 꿈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중학교 때와 다르게 더욱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독기를 품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정말 기숙사에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6시에 일어나는 패턴을 유지했고 쪽잠을 자면서 컨디션을 유지했다. 그 결과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8등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그 이후로 미친 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곡성고는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을 잘 들어갔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많이 진학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공부에 집중해야 했고 중학교 때와 다르게 친구들과 많이 놀지 못했다. 자연스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처음에는 안 좋은 소문이 들렸다. 잠도 안 자고 공부만 하는 독한 애라면서 나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의 독함은 사실이고 성적으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한 결과 2학년 문과를 진학한 이후부터는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3학년 때 제일 성적이 좋았는데 1.3, 1.4 1학년 때 등급이 1점대는 아니어서 총점이 1.8이었지만 문과에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실제로 성균관대 광주교대 진학을 고려 중이었고 수능을 잘 보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유난히 추웠던 2013년의 11월을 기억한다. 언어를 풀면서 손이 덜덜 떨리고 수능을 심하게 망쳐버린 것이다. 남들 다 있는 스마트폰도 없이 공부만 했는데. 수능 끝난 날 아빠가 사주는 갤럭시 S4로 가채점을 하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