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임정은의 일대기
삶의 목표를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었다. 수능 다음날 나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학교 안 가겠다고 등교 거부를 선언했다. 아빠는 나를 설득했다. 네가 삶의 의미가 없어지면 너를 키우는 나의 삶의 목표는 어디로 가냐며 학교는 가야 한다고 차로 태워주며 억지로 등교했다. 고3 담임선생님은 내가 수능점수 가채점을 내지 않으면 반 애들 모두가 하교하지 못할 거라고 협박을 했고 결국 가채점을 학교에 제출했다. 나와 함께 공부를 했던 라이벌이자 친구인 같은 반 친구는 수능이 대박이 났고 담임은 그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정말 비참해졌고 나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내 친구는 한참을 밖에서 지켜보다 갔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무기력증을 경험했다. 그래도 전남대 면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면접 준비를 해야 했지만 별로 대학진학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냥 공무원이 되어서 돈을 벌며 적당히 사는 게 효도도 하고 편한 삶이지 않을까? 돈 버는 게 효도도 하고 괜찮은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전히 열심히 사는 버릇이 남아 면접 준비는 열심히 했다. 아빠는 딸의 진학을 위해 새벽에 전남대를 데려다주며 파이팅을 외쳤지만 나는 별 욕심도 없었다.
12월쯤 합격 소식을 접했다. 전남대 신문방송에서 나를 합격시켰다. 아마 다른 과였다면 진학을 고민했지만, 다행히 신문방송이었고 아빠랑 한참을 싸우다가 대학 예치금을 나 몰래 넣어버려 게임은 끝이 났다. 아빠는 내가 다시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골드라는 말을 데려왔는데 우리 말은 아니고 친한 지인의 말을 위탁 겸 관리해주는 대신에 자식들의 승마를 교육하는 것이었다. 삼 남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승마를 잘했고 아빠는 어디 가서 돈 주고 배울 수 없는 것이라며 자는 나를 깨우며 승마를 시켰다. 골드와 친해지고 승마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실감했다. 우리 아빠도 참 표현은 무뚝뚝하지만, 삼촌들에게는 날 보면 밥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부르다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사랑받았던 나는 대입실패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고 전남대 신문방송에 입학하여 활발하게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