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우울함은 아마 평생 대면해야 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인생은 좋은 일도 많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든 일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기쁨과 함께 슬픔, 그리고 우울함도 항상 공존할 것이다.
무기력증을 겪은 적이 있다. 정말 무기력증이 심했던 시기를 지나, 지금도 사실 약간은 겪고 있지만, 확실히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한철 나를 괴롭히는 감기처럼, 무기력증을 보내면서도 다음에 무기력증이 찾아올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우울감과 함께 찾아오는 무기력증이란, 완벽하게 치유되는 것도, 완벽하게 예방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마냥 누워만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의 일과는 이러했다.
“일어나기 싫다”라는 감정을 가지고 늘어지듯 잠으로 회피한다. 잠이 안 올 때까지 억지로 잠을 청하다, 결국 점심에 느지막이 일어난다. 일어남과 동시에 세상만사가 귀찮음을 느끼고, 몸에 안 좋겠지만 또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엔 그게 심리적 허기짐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실 중요하지 않다. 알았어도 해소할 방법을 모를 테니까. 심리적 허기짐에 라면 하나를 더 끓여 먹는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무언가 조차 하기 싫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았더라, 사람들은 다 어떻게 열심히 사는 거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며 귀찮아진다. 그래서 다시 눕는다. 잠으로 회피한다.
그렇게 잘 수도 있겠냐고 묻겠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무기력하면 몸이 깨지 않고 잠을 계속 청한다. 5시에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난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당연히 마음에 들을 리 없고, 오늘 하루 잠으로 채운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 그리고 하루를 버렸다는 상실감에 괜스레 기분이 더 나빠진다. “지금이라도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지!”, 또는 “건강한 밥을 먹고 열심히 해야지!”라는 의지도 무기력증이 없고 동기가 있을 때나 가능한 법. 동기가 없을 땐, 그저 망한 어차피 망한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다. 그래서 다시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잠을 청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 내가 이런 무기력증을 겪었다는 것을 알면 굉장히 놀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쉬기보다 계속 무언가를 하면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새로운 인풋에서 얻는 자극을 좋아했고. 세상엔 볼 것, 시도할 것 투성이었고, 성장하는 내가 좋았다.
하지만, 그런 내가 싫어질 수도 있더라.
열심히 해야 하는 동기가 사라지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하찮게 느껴지면, 선명하게 보였던 내 일상의 생명력이 빛을 잃는다. 결국 색이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색을 찾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나와 같은 무기력증을 겪은 사람들의 대부분을 보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지장 없이 해내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이런 무기력증을 겪었을 때 여러 대외활동, 인턴 등을 문제없이 했고, 오히려 정말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외의 삶. 충분히 생각할 만큼의 휴식이 주어졌을 때, 무기력증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1년 정도 그런 무기력증을 겪었고, 무기력증의 나락에 허우적거리다가, 몇 가지 극복 방법도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는, 무기력증을 겪어본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자연스레 들이닥칠 수 있는 여러 감정들 중에 하나의 면을 알게 된 것이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흔들리는 사춘기, 입시를 앞둔 수험생,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 대학생, 하고 싶은 것들을 현실적 벽에 부딪쳐 못하는 사람들, 취준생, 공시생,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등.
일상으로, 일으로,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우울감의 영역에서 나는 몇 가지 극복 방법을 찾았다. 나의 몇 가지 극복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다르지 않은 나의 삶과 극복 방법이 위안이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