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미국 실리콘밸리에 살게 된지 딱 일년되어 간다. 일년이 정말로 순식간에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영원한 시간처럼 멀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 곳에서 살면서 한국인 친구는 한 명, 그리고 여러 명의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도 그런 것이 이 지역에는 한국인들이 좀처럼 없을 뿐더러 한인타운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산타클라라 지역에 한인 스트릿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크지 않다. 삼성, LG, SK 하이닉스 등 굴지의 한국 기업들이 이곳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긴 하지만 LA한인타운처럼 몰려 있지는 않다. 특히 내가 사는 산마테오지역은 한국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곳이 낯설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우리와 생김새나 문화가 비슷한 중국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작년 3월에 처음 미국에 이주하여 약 4달 간 포스터 시티라는 지역에 살았는데 이 시티 전체가 중국인이었다. 대부분 대만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 지역 드라이빙 레인지(골프연습장)에서 중국 본토에서 자식 교육 때문에 이주한 상류층 아주머니들을 사귀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제일 절친한 친구가 된 피비가 있다. 지금은 한국의 그 어떤 친구보다 내게 제일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피비는 홍콩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민 와 살고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혼자 이민 오게 되었고, 그 후 부모님과 남동생 모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케이스다. 어린 나이에 혼자 이민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학교를 다니고 쉽지 않은 삶이었다. 지난 주 피비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돌아다녔다. 그 유명한 언덕을 오르내리고 어느덧 아름다운 베이브릿지가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 자신의 어린 시절 힘들고 외로울 때 혼자 이 언덕에 책을 들고 와서 읽곤 했다면서 그래서 자신이 샌프란시스코 골목골목 아주 잘 아노라 이야기 하더랬다. 어린 피비가 그려지면서 맘이 짠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차이나 타운을 구경하고 그 곳 레스토랑에서 딤섬 등등 먹었다. 말로만 듣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1840년대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 철도 건설 및 골든게이트 브릿지 등등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 광둥성 지역의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노고와 희생으로 오늘날 북미 지역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이다. 그 이후 1960대 홍콩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 오면서 다시한번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 활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돈을 많이 번 중국 이민자들은 주변 도시로 이주하였고, 지금은 중하층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남아 생활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중국인들이 많아 낯설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인들에게 밀리는 듯한 한국의 위상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 한류 열풍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아주 호의적이라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주로 나를 보고 일본인인 줄 아는데 특히 중국인들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얼굴의 인상과 말투가 호의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일본을 우리만큼 어쩌면 우리보다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여성들은 나의 피부며 옷, 신발 등등 외모에 무척 관심을 쏟는다. 내가 특별히 외모에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그들이 볼 때는 그저 한국인들이 다 예쁘고 세련됐단다. 한류열풍의 덕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보고 있다. 가끔씩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을만큼 이곳에서 중국인들 그리고 중국 커뮤니티는 대단하다. 게다가 최근 5년간 중국의 급성장으로 중국본토에서 엄청난 부를 획득한 이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와 집값을 엄청나게 올려놓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중국인들이 좋다.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무례하고 지저분하다고 싫어하지만 그들 개개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중국인 특유의 매력을 알게된다. 일단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고, 심지어 켄트니(광둥어)의 경우 단어의 발음도 흡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밝고 씩씩한 그리고 적극적인 근성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중국 여성들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무척 씩씩하고 의리있고 정이 많다. 친구 피비는 시애틀에 살고 있는데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놀러온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걸 사오거나 나의 부탁이면 무조건 OK! 아마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올 그런 친구이다.
미국은 먼저 이민와서 자리잡은 순서대로 보상을 받는다더니 그 말이 전혀 틀린말은 아닌 것 같다. 메이플 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온 영국의 청교도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주인행세를 하고 있고, 그 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 온 유럽의 백인들, 그리고 골드러시로 인해 강제 이주 되었거나 노동을 위해 온 중국인들 순으로 미국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의 복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처음이 되는 부모 복, 소위 조상복이란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개척을 위해 첫 희생을 해야하고, 경작할 땅을 일구고 그의 후손들은 그 곳에서 대대로 뿌리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골드러시 때 이주하여 수많은 희생을 한 중국인들의 후손들은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