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sto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귿 Feb 16. 2020

죽음과 헤어짐: 죽음 앞에서의 사유

2016년 12월 30일의 기록

  같이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온 시간과 최근 며칠간 변해버린 그를 번갈아 떠올릴 것이다. 살아갈 날은 너무 많이 남았으되,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은 이제 중병에 걸려 변해갈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찰나였겠지. 어눌해진 말과 알 수 없는 언어들, 이전까지의 그 사람은 사라지는 병, 그것을 옆에서 목도하면서 사는 삶.

-만약은 없다. p277



  우리는 살아가면서 헤어짐이 있음을 깨닫는다. 초등학교 내내 단짝이었던 친구가 이사를 가고 고등학교를 떠나며 정들었던 선생님들과 작별을 하며, 2년 간 살을 맞대던 전우들을 뒤로한 채 전역한다. 헤어짐 뒤엔 늘 새로운 만남이 있고 때론 뒤를 돌아보며 추억한다. 그리고 추억 속의 인물들과 재회한다.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추억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하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도 있다. 야속한 세월은 나와 가족, 친구들, 애인, 모두에게 흐른다. 흐르는 세월 속 천운이 다 하였는지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누리다 죽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죽음 앞에 우리는 추억을 공유하던 사람들을 한 명씩 떠나보낸다. 



   작가 남궁인은 응급의료실의 의사였다. 그의 책 ‘만약은 없다’는 응급의료실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만약은 없다'의 표지에서 말했듯이 그는 늘 죽음과 삶, 그 경계에서 유영해 나간다. 범인이라면 평생을 살아도 다 겪지 못하는 죽음 앞에서 의사 또한 비틀거리다 보면 다르지 않다. 남궁인 작가는 말한다. 죽음 앞에 ‘만약은 없다’고. 그의 작가 소개말은 만약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매 순간 ‘선택’에 직면하고, 수없이 많은 ‘만약’이 가슴을 옥죈다. 순간 다른 처치를 했다면, 감압이 성공했다면, 지병만 없었더라면, 수술방만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출혈이 진행됐다면, 곁을 지키던 나를 봐서 환자가 좀 더 버텨주었다면,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최악을 피할 수 있었던 일들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했다.


  작가는 죽음에 대해 ‘만약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죽음은 우리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범인보다 의사들은 죽음 앞에 더욱 처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처음 ‘만약은 없다’를 알았을 때, 죽음을 다루는 글이라 생각해 흥미가 있었는데, 기회가 있어 선물로 받았다. 나름대로 정의해가며 책을 읽어나갔다. 처음엔 ‘작가의 자아성찰적인 글이다. 그리고 자만적인 글이다.’라는 짧은 감상평만 남았다. 자신은 생명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며 자신과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씩 넘겨가며 생각은 여러 모양으로 바뀌었다. 죽음에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점점 죽음에 무뎌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자책하기도 했다. 내용은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지 않고 때마다 휘갈겨 적어놓은 글을 중구난방으로 섞어 뽑기를 해서 줄 세워 둔 것 같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확실히 더욱 책에 빨려 들어간다.


  남궁인 작가는 죽음에 대해 정의하지 않는다. 독자가 책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뿐이다. 나 또한 책을 보며 죽음에 대해 떠올려본다. 우리의 약한 육체는 하나의 장기라도 고장 난다면 부품 빠진 기계처럼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품 하나 빠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죽음이 가까이 있다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우리는 삶이 영원히 이어질 듯 살아가기에 죽음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 책을 보며 죽음은 늘 가까이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삶의 감사함을 느끼고 좀 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리포터 '연극 각본'으로 돌아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