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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귿 Jun 13. 2019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더 기버

The giver. 기억전달자

   빨간약 줄까, 파란 약 줄까? 영화 매트릭스를 봤는가?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빨간약과 파랑 약의 의미를 알 것이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넨 약 중 빨간약은 현실을 깨닫게 해 주고 파란 약은 살던 대로 잘 살아라~ 하고 모피어스를 만난 기억을 잊게 해 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매트릭스를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내가 네오라면 빨간약을 먹을까 파란 약을 먹을까. 나아가서 사이퍼처럼 빨간약을 먹더라도 다시 돌아갈까.
   

   소설 더 기버는 감정, 언어, 성욕, 가족, 날씨, 직업, 색깔 등 모든 것이 통제되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을 이야기한다. 정말 별 거 아니다. 주인공 조너스가 12살이 되어 작위 수여식에서 기억 보유자로 선출되고 기억을 전달받으며 점차 사랑의 설렘을 알아가고 색이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모든 것이 부당하게만 느껴지게 되는 사춘기의 한 소년 이야기다. 사춘기에 다 그러지 않는가? 세상 모든 게 불행해 보이고 불만족스럽다. 그때는 누구나 반항을 하고 싶어 하고 일탈하고 싶어 한다. 그럼 사춘기의 소년 이야기가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소설의 배경을 더 살펴보자.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미래 어느 작은 공동체 마을이다. 그리고 그곳은 '늘 같은 상태(sameness)'를 유지한다. ‘늘 같은 상태’란 유별날 것이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에는 기초 가족(부, 모, 자녀는 최대 2명)이 모여 지난밤 꿨던 꿈을 말하고 느낀 감정을 말하며 감정을 통제하는 약을 먹고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며 일거수일투족이 늘 모니터링된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만족한 삶을 산다. 분쟁도 싸움도 없다. 남을 헐뜯거나 비난할 수 없도록 교육되고 불명확한 언어 사용은 금지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임무 해제가 될 때까지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미숙아가 태어나거나 규칙을 어겨도 임무 해제된다. 즉,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마을인 것이다, 이런 마을에서 유일하게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기억 보유자가 있다. 그는 홀로 가지고 있는 기억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원로들이 필요할 때 마을에 필요한 것을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조너스는 이 마을의 한 명의 소년에 불과하다. 다만 다른 것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그 너머를 보고’ 몇십 년에 걸쳐 한 명을 뽑는 기억 보유자로 선출된 것뿐이다. 아참. 중2병 환자가 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적어도 ‘나만 특별해!’를 외칠 정도의 스펙(기억 보유자 선출)은 되니까. 그런 조너스는 우리가 아는 청소년답게 사회에 반항하기 시작한다. 약을 몰래 먹지 않거나 거짓말도 하고 마침내 가출까지 한다. 부모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가족도 가질 수 있고 집도 주고 직업도 주고 싸움도 다툼도 분쟁도 없는데! 이 정도면 행복한 삶이지 않은가?
 
   나의 청소년 시절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조너스와 같은 삶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야 하는 공부 거리도 많고 자야 할 시간도 부족한데, 딴생각을 언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입시공부를 하고 대학을 진학했으며 졸업을 했다. 뒤늦게 현타(현자타임. 허무함과 공허감을 뜻하는 말)가 와서 방황을 많이 했더랬다. 지금은 겨우겨우 지금 내가 하고픈 일을 찾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진즉에 생각할 수 있었다면 내가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야 자신을 알아가며 하고 싶은 바를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청소년이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때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면 안 된다. 나에게 주어지는 규칙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가 규정한 법칙에 의해 가꾸어져 가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다.
 
   모든 것이 통제된 삶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규칙에 묶인 채 살아간다. 물론 규칙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도덕과 윤리의 원칙은 사회가 폭력에 시름하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반면 사고의 범위를 제한하고 정신이 기계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문화와 민족과 남녀는 평등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법칙과 교육이 이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낸다. 이를 잘 다룬 ‘트루먼쇼’라는 영화가 있다. 트루먼은 리얼리티 TV쇼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어릴 때부터 그의 모든 것은 감시되고 촬영되며, 그의 친한 친구 심지어 부모님조차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다.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그가 사는 마을 이름이 천국(SEA HEAVEN. 마을 이름)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 마을은 마치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과 유사하다.

 
   영화 마지막에 트루먼은 어릴 적 트라우마였던 풍랑을 뚫고 세트장의 끝에 다다른다. 여담이지만 트루먼의 마지막 인사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조너스 또한 기억을 받고 자신이 통제된 곳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억 전달자와 충분한 계획 세우고(사실 치밀하고 큰 계획까지 되지도 않는다) 마을을 뒤로한 채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가브리엘과 도망한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 도망쳐 나온 마을을 다시 떠올리지만 눈썰매를 타고 눈이 쌓인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마을에 대한 생각을 멀리 떨쳐버린다. 조너스의 선택은 안전과 평화가 유지되는 마을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는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기로 한다. 마지막은 트루먼과 같은 인사가 어울릴 법하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당신이 조너스라면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현실을 깨달았지만 평화롭고 불행이 없는 마을에 남아 기억 보유자로서 존경받으며 살겠는가, 아니면 평화롭지 않고 고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선택이 있고 자기감정을 마음껏 누리고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깨어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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