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 박해일, 탕웨이가 만났고 김신영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해 이슈가 되었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폐막의 끝자락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이런저런 일정으로 인해 미뤄왔던 영화였지만 한편으론 VOD가 나오면 볼까 싶기도 했어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는 그런 생각이 단 하나도 들지 않았지만요.
저는 본래 로맨스, 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에서야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 한국 드라마는 늘 사랑이 메인 주제였고, 제가 한국 드라마를 피하는 원인이기도 했죠. 그래서 멜로/로맨스인 ‘헤어질 결심’이었기에 차일피일 미루며 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따위 들지도 않을 만큼 영화관에서 본 헤어질 결심은 최고였고 이런 멜로/로맨스도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헤어질 결심의 포인트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인 만큼 영화 속에 숨겨진 의도나 생각을 알아가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만 적어도 한 번만 보실 분들은 그냥 영화를 따라서 박해일, 탕웨이 두 배우의 연기와 감정을 느끼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멜로/로맨스라는 장르만 알뿐, 어떤 영화인지 찾아보지 않은 채 관람했습니다.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있으니 재미는 보장하겠다는 생각 하나였어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이것저것 숨겨진 의미를 찾거나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어 영화를 보면서도 참 생각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두 배우가 표현하는 연기와 감정 표현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영화의 의도나 숨겨진 의미도 영화를 보고 난 후 함께 본 짝지와 대화를 통해 생각을 해봤을 뿐이었고요.
메시지가 배제된 순수한 멜로를 찍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 칸영화제에서 있었던 한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 중
내용 출처: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20802010001100
처음 탕웨이와 박해일이 경찰서에서 마주했던 장면, 박해일의 집에서 그들이 나누었던 대사, 박해일이 탕웨이에게 수갑을 채워 뒷좌석에 함께 앉아 손을 포개던 장면... 그 모든 장면이 아직도 남아서 그 둘의 미묘한 감정은 느끼게 해줍니다.
이들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할 것입니다. 박해일은 아이(극 중에서 언급만 됨)와 아내(이정현 분)가 있으며 직업은 형사입니다. 반면, 탕웨이는 사망한 남편이 있고 그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금제가 있기에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박해일은 극 중 한 번도 탕웨이에게 ‘사랑’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죠. 탕웨이의 첫 번째 남편 살인이 사실이었던 것을 알게 된 후 둘은 탕웨이의 집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요. 이때 녹음했던 내용을 영화 후반부에서 탕웨이가 들려주며(탕웨이로 인해 붕괴되었다는 표현을 쓴 박해일) 박해일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말하기 전까지 박해일은 탕웨이에 대한 진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보통 불륜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관계부터 생각나지 않나요? 그런데 오히려 헤어질 결심에서는 박해일과 아내의 육체적 관계는 나오지만 탕웨이와의 관계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정현은 극 중에 계속해서 육체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대사를 하지만 탕웨이와 박해일 사이에는 그런 대사도 장면도 등장하지 않죠. 이를 비교해서 이해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박해일이 처음 탕웨이를 취조실에서 마주하고 밥을 시켜 먹는 장면인데요. 밥을 시켜 먹고 딱딱 자리를 정리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습니다. 그런 탕웨이를 보며 박해일은 “당신은 나랑 같은 종족”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만큼 둘은 처음부터 봤을 때 한눈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것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정현한테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을 탕웨이에게서 느끼는 것도 그렇고... 탕웨이와 박해일의 관계가 굉장히 정서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이해할 수 있죠. 이런 장면들이 있기에 둘의 사랑이 더욱 진실되게 느껴지는 멜로/로맨스가 된 것은 아닐까 하네요.
마지막으로 ‘시선’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맺으려고 합니다. 영화는 크게 첫 살인사건과 두 번째 살인사건 두 파트로 구분됩니다. 첫 살인사건은 박해일의 시점에서 탕웨이를 바라보는 시점이었다면 두 번째 사건은 탕웨이의 시점에서 박해일을 바라보는 시점인데요. 몰래 자신의 집을 훔쳐보는 박해일을 생각하며 ‘듬직한 사람이 지켜주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며 박해일의 접근을 기다렸던 탕웨이가 영화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박해일에게 사랑을 어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입니다. 두 번째 남편을 설득해 박해일이 있는 지역으로 가서 박해일과 만나게 한다거나 박해일이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번째 남편 살인사건을 주도한 것 그리고 끝내 바닷속에 가라앉으며 “나는 당신의 미제 사건이 되고 싶다"라는 대사를 통해 탕웨이가 주도적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죠. 두 파트를 비교해보면 박해일과 탕웨이의 감정 변화가 시점으로 인해 굉장히 주관적으로 잘 다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둘에게 몰입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정말 오랜만에 멜로/로맨스 장르를 보았습니다만 이렇게 만족한 것은 처음입니다. 직접적인 사랑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의 연출이 아닐까 하네요. 박찬욱 감독님의 연출 덕분이겠지만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탕웨이 배우가 잘 하지 못하는 한국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진짜...
박찬욱&탕웨이&박해일의 조합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나온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런 멜로/로맨스라면 또 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