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제 나이도 30대 중반입니다. 분명 나이는 먹고 건강은 나빠지는데 정작 제 정신은 아직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네요. 처음 딱 30살이 되었을 때 그랬습니다. 마치 제가 저학년일 때 고학년 선배가 멀게만 느껴졌던 것처럼 마냥 멀게만 느껴지던 30이란 숫자를 맞닥뜨렸을 때, 전혀 실감이 안 났어요. 숫자는 2와 3은 큰 차이가 없지만 그 사이의 10년이라는 시간을 20대로 보냈으니 30이란 숫자가 어색하고 낯설 수밖에요.
제 정신은 20대 초반, 송정으로 MT 갔던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사회에서 30살을 바라보는 시선과 중압감은 분명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고, 내 시간을 써서 회사에 바쳐야 했습니다. 즐겁게 연애를 하던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법적인 의무가 주어지는 결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30이 되니 유독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기분이었고, 부모님과 친척들이 바라보는 저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30대에 천천히 적응해나간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강과 산, 나라의 영토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이 변한다고 하니 적어도 저는 강줄기 정도는 바뀐 것 같네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지만 20대 때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해야만 했던 것을 하지 않았음에 통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20대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기도 했어요.
꼭 30대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건강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썰 중 20대에 매일 밤새는 체력이 있는 것은 '20대에 애를 낳고 키워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본 적 있는데, 그만큼 체력이 한창 좋을 때라는 거죠. 그런 체력을 바탕 삼아 술과 담배 그리고 잠을 줄여가며 살았었습니다(그래도 담배는 20대 중반에 끊었습니다). 그렇게 쓴 체력은 20대 후반부터 점차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30대로 넘어오면서 미리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죠. 어머니가 그토록 챙겨 먹으라던 영양제를 이제야 챙겨 먹기 시작했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조금만 움직이면 빠지던 살이 빠지지 않아 먹는 양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제 장이 과민성이라는 진단을 받아서 먹는 것마저도 더 조심하고 있고요. 거기에다가 눈도 안 좋아져서 부지런히 안경을 쓰고 다니고 왼쪽 발목이 좋지 않아 가끔 교정을 위한 보호대를 찹니다.
또 하나는 사람입니다. 20대 때까지는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친구들도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쁘죠. 이제는 정말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게 됩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사회에서 만남 지인들뿐이죠. 가끔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더라도 체력 소비가 커서 만남을 잡기가 꺼려집니다. 그리고 내 건강뿐 아니라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나이가 더 많으신 조부모님, 친척들이 돌아가시기도 하죠.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잘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대다수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다 보니 하루에 내 시간으로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일하면서 지친 에너지를 수복하거나 운동, 식사하는 시간까지 빼면 거의 남는 시간이 없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포기하고 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멀리하며, 사회적 약속을 위해 휴식을 포기합니다. 부모님의 세월을 막을 순 없고, 세월은 원치 않은 이별을 안겨줍니다(평생을 키워주신 외할머니와의 이별이 마음에 남아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짓곤 하네요).
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후회요,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숙제입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대한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해 후회할 일을 하지 말고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혹시라도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