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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모 Sep 18. 2020

 이별이 가까워지는 시기네요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요.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마주치고 싶든지 아니든지 간에 늘 보던 또래들과 늘 함께였고, 이 관계가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우리의 관계는 환경이 바뀌면서 소원해지거나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했죠.


 그렇다고 그 당시가 그립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보고 싶으면 못 볼 것도 없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볼 수 있었죠. 다만 이제는 영영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뿐입니다.


 보고 싶은 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언젠간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상실감도 별로 없을 겁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기쁘기는 하겠죠. 하지만 상대방을 영영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다시는 못 본다는 그 상실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부모님을 여의신 분들이 하시는 말을 들어보면 대개 부모님의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어두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 그날의 추억과 같은 그리운 것들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래요. 저는 그 말을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비로소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작년 설 전에 할머니가 쓰러지시고 거의 1년 3개월 정도 투병 생활을 이어 오셨습니다. 거의 없던 할머니의 사진과 영상을 투병 생활 중에야 부랴부랴 찍곤 했죠. 제 폰의 가족사진 폴더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기 전 사진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코로나가 터지고부터 병원은 가지도 못해 올해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진작에 건강하실 적 모습을 담았으며 한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올해였나요.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어린 나이에 죽은 딸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어머니와 만나게 해 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딸과 재회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내었죠.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관계였다면, 영상에 담긴 모습과 같이 나오진 않았을 것입니다. 딸은 집에서 놀고, 어머니는 잠시 장 보러 갔다가 돌아와 만나는 장면이 감동이 있을까요? 이 만남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위로를 주었던 건 다시는 만남이 이뤄질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했을까요... 다시는 할머니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멥니다. 지난날 못 해 드린 것들이 계속 생각나기만 합니다. 아직도 집에 오면 매일 웃으시며 마주해주시던 웃음과 챙겨주시던 그 모습이 아른거리는데... 그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매우 애통스럽습니다.


 저의 30대는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가족의 죽음을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서 부모님을 여의였다거나 가까운 친인척을 떠나보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때론 장례식장에 찾아가 두 손을 맞잡고 함께 슬퍼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이나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지요. 

 

 우리는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이 남았고 앞으로 더 많은 이별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부모님도 친구들도 주변 지인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아니더라도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나보다 어린 사람을 먼저 떠나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우리는 삶의 마침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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