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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생활 Aug 13. 2021

나는 여행마다 안좋은 일이 생기는 징크스가 있거든

네시(Nessie)를 찾아 떠난 스코틀랜드 네스호 여행


이상생활 여행 에세이, 첫 번째 편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안좋은 일이 생기는 징크스가 있거든

-네시(Nessie)를 찾아 떠난 스코틀랜드 네스호 여행


프랑스에서 온 안토니,

미국에서 온 로렌과 함께 떠난 4박 5일 여행 중

인버네스의 네스호는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네스호의 괴물

‘네시(Nessie)’를 찾을거라며

여행 몇주 전부터 기대해왔던 곳이라

더욱 마음이 설렜다.






네스호는 정말 넓어서, 그냥 따라 걸으면서 여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트를 타고 네스호를 둘러보기로 했다. 포트윌리엄에서 인버네스로 이동하던 도중, 우리는 ‘포트 어거스트’라는 아기자기한 동네를 발견했고, 그 다음날 이 곳에 돌아와서 보트를 타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다음 날, 부지런한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는 아침 여덟시에 스코틀랜드식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보트 예약은 한 시여서 우리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그동안 시간을 떼울 카페를 찾았다. 여유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빅토리안 마켓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복층구조가 독특했던 빅토리안 마켓의 카페


우리는 포트윌리엄, 멜리그, 인버네스 등 여행 일정들을 되짚어보며 어떤 것이 좋았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니 정말 좋았던 일들 뿐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안좋은 일이 하나도 안 일어났네.

보통 나는 여행할 때마다

하나씩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했었거든.”


사실 이전 여행들에서도 심각하게 안좋은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다만 이번 여행이 너무 사소한 트러블도 없이 완벽했을 뿐이었다. 우리의 계획 중 어느 것도 틀어진 것이 없었고 메뉴 실수, 직원의 불친절과 같은 작은 아쉬움조차 없었다.


내 말을 들은 로렌과 안토니도 이번 여행은 정말 흠 잡을 데 없이 좋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보트를 탈 기대감에 들떠 포트어거스트행 버스에 탑승했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네스호는 햇살 아래 반짝거려 더욱 아름다웠다.


네스호는 길어 길면 네스호


약 한 시간 후, 버스는 포트 어거스트에 가까워졌고 내릴 준비를 하기위해 졸고 있는 로렌을 깨웠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던 그 때, 갑자기 버스가 정차했고 버스기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창밖을 보니 우리 앞뒤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다 버스 밖으로 나가자 우리도 따라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것도 없는 고속도로 한복판이었다.


버스기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묻자 우리 한참 앞 쪽에서 큰 사고가 났다고 했다. 다른 운전사들의 대화에서 사람 둘이 크게 다친 것 같다는 말도 들려왔다. 버스 운전사는 우리에게 현재 도로가 막혔으며 다시 이용 가능하려면 8시간은 걸릴 거라고 말했다. 포트 어거스트까지는 걸어서 한시간쯤 걸릴거라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가만히 계산해 보았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 찾아서 간다고 해도 일단 보트 시간은 놓친다. 버스 기사는 우리에게 다시 인버네스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버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30분만 걸으면 이전 정류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지금 인버네스로 돌아가도 들를 곳, 즐길 곳은 많다. 우리는 그 발걸음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가볍게 발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의 고속도로 여정은 시작됐다.



한 30분쯤 걷다 보니 울창한 숲이 나왔다. 로렌은 버스 창문 밖을 통해서 본 곳이라며, 사실 자기는 이 곳에서 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렌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 모든 일이 내 징크스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버스 타기 직전,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너무 완벽하다는 말을 하자마자 이 사단이 난 것이니 말이다.


안토니가 숲 안쪽의 작은 집을 가리키며 꼭 해그리드의 집 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와 로렌은 그 집에 들어가고자 숲 깊이 들어갔고, 안토니는 사진을 찍으러 다른 쪽을 향해 갔다.


기어이 들어간 작은 오두막

숲 안쪽은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몇 번 미끄러질뻔한 위기를 넘기고 로렌과 함께 숲을 빠져나왔다. 안토니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고, 전화를 몇 번 했지만 너무 외진 곳이라 신호조차 잘 터지지 않았다.




로렌과 함께 도로를 따라 걷던 도중, 우리는 동물 가죽으로 둘러싸인 로컬샵을 발견했다. 진짜 양, 소가죽을 이용해 만든 물건들로 가득한 가게였다. 과거의 스코틀랜드에 정말 있었을 법한 작업실을 둘러보는 느낌이라 푹 빠져서 한참 물건을 구경했다.



그 때, 가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조그만한 서양 여자애 한 명이랑

키가 조금 더 큰 아시안 여자애 보셨어요?”


안토니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연락이 잘 되지 않자 여기저기 사람들을 붙잡아가며 우리를 찾았던 것이었다. 나와 로렌은 깔깔거리며 꼭 인질들을 잃어버린 사냥꾼같다고 놀렸다.


우리는 한참 더 걸었고, 버스 정류장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경찰들이 사고 때문에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들은 다른 버스기사에게 길을 물어봐 주었고, 그 버스기사는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는 다른 길을 이용할 거라며 외딴 방향의 고속도로를 가리켰다. 그 쪽으로 한참 걸어가다보면 버스 정류장이 나올 거란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걷고 또 걸었다.


Z세대는 인터넷 빼면 시체거든요


외딴 곳이라 신호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구글 맵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표지판 하나 없는 텅 빈 도로를 한 시간은 넘게 걸은 듯 했다. 해가 지려고 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토니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엄지손가락을 들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로렌과 나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다리가 점점 아파오자 어쩔 수 없이 같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차들은 차갑게 우리를 지나쳤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도 외지인 세 명을 선뜻 차에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쳐가는 차들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로렌의 도로 한복판에서 곡예타기


우리는 고속도로 중간에 세워진 집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중년의 부부가 문을 열어 주었지만 우리를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였고, 큰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길가에 세워진 차에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도로공사에서 일하는 것 같은 남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고 했지만 유익한 정보를 주었다.


“이 쪽으로 걸어간다고요?

80km는 걸어야 마을같은 마을이 나와요.

계속 고속도로에요.”


이 말을 듣고 우리에게 이 길을 추천한 버스기사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우리는 그 기사의 말만 믿고 한참을 텅 빈 고속도로를 걸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아픈 다리를 붙잡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결국 한참을 더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갔고, 생각보다 빨리 사고가 해결됐는지 경찰들이 도로 봉쇄를 풀고있었다. 다행히도 머지 않아 인버네스로 돌아가는 버스가 왔다. 그렇게 네스호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던 하루는 가 버렸고, 조금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인버네스로 돌아가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그 도중에 리버 네스에서 나무로 만든 네시를 발견해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더니, 그걸 본 트립이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네시를 찾았구나!


같이 여행을 오고싶었던 트립의 메시지라

한층 더 반가웠다.


숙소에 돌아가서 잘 준비를 하면서 그 날 하루와 여행에 대해서 돌아봤다. 그 날은 우리의 4박 5일 하이랜드 여정의 마지막 날이었고, 다음날이면 글래스고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날에 어김없이 찾아온 내 징크스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날 겪었던 사고는 내 징크스의 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신호가 전혀 터지지 않는 곳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노래부르며 또 가끔은 침묵 속에서 걸었던 시간들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안좋은 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뻗을 때의 쭈뻣거림과 낯선 사람 집을 두드릴 때의 두려움, 깊은 숲 속 내부의 늪을 건드릴때의 생경한 느낌은 온전히 나에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네스호를 보트 타고 건너는 게 뭐 대수인가, 우리는 고속도로를 걷는 내내 도로 옆에 펼쳐진 네스호를 보고 또 봤다.



네스호에서 네시를 찾겠다고, 장난스럽게 다짐했지만 조금은 진짜 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버네스에서 나무로 만든 네시를 찾았으니 됐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징크스가 아니라고 하면 징크스가 아닌 것처럼네시도 내가 네시라고 하면 네시인 거다.


그리고 다음 날, 안토니는 우리에게 모자 쓴 작은 네시 모형을 선물로 줬다. 비록 상자에 담긴 네시였지만 네스호 옆을 걷고 또 걸었던 나는 그 네시가 네스호에 담긴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결국 네시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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