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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생활 Jun 28. 2022

상징의 연금술

feat. 파리, 그리고 에펠탑 

<ⓒ 2022. 이상생활. All rights reserved>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왜 사람들이 파리 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고 그것을 파리의 상징, 또는 유럽여행의 상징으로 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상징에 집착할까. 기껏 해봐야 커다란 고철 덩어리일 뿐인데 말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시니컬한 태도를 가져왔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던가. 교양 수업에서 길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고, 나는 광복절도 안 챙기는 사람들이 서양 명절과 그 분위기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화려한 전구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 이유를 하나 더 만드는 상술일 뿐이라고. 


그 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하하, 20대 맞아요? 왜이렇게 낭만이 없어.



글쎄, 나는 낭만이 없다기 보다는 상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의 첫 인상

 처음 파리 공항에 내렸을 때만 해도, 내가 살던 영국과 그렇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거리와 건물의 모양새, 사람들의 생김새는 런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파리 별 거 없구나.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들리는 말소리와 건물의 글자만 낯설었을 뿐이었다.


 이랬던 나의 생각은 숙소에 들어가 창문을 여는 순간 완전히 뒤바뀌었다. 

숙소 창문을 통해 본 에펠탑

 창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건물들 속 커다란 에펠탑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와, 정말 내가 파리에 있구나. 바로 그 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 속의, 어둠 속의 에펠탑

아침 안개에 싸인, 노을 속의, 어둠 속에 반짝이는 에펠탑은 시시각각 아름다웠고 파리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터무니없이 비싼 숙소, 음식의 가격에 화가 나다가도 창밖의 에펠탑을 보며 위안을 얻곤 했다. 


그래도 여기가 파린데. 평생에 몇 번 올지 모르는 파리인데 뭐 어때. 그래서 파리 어느 관광지를 가도 살 수 있는 에펠탑 키링도 고민 끝에 못 이기는 척 구매했다. 


에펠탑 앞에서 찍은 스냅샷


 파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어딜 가도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요리, 그리고 화려했던 역사를 상상케하는 박물관과 궁전들.  그리고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또는 에투알 개선문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풍경은 정말 완벽했지.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에펠탑의 모양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처럼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에투알 개선문에서 내려다본 파리 풍경


 그래서 파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에펠탑만 보고도 그 완벽했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상징물이 주는 효과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분명했다. 내 손 안의 에펠탑 키링만 봐도 파리에서 보냈던 시간과 머물렀던 공간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상징물은 분명할수록, 물리적일수록 좋다. 내가 어떤 장소에서 보냈던 추억이 하나의 물건으로 표상될 수 있기 때문에.


파리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작은 에펠탑을 꺼내보며 그 때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상징물에는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물성이 있는 것으로 바꿔보려고 애쓰고, 상징은 그 불가능한 연금술이 가능하게끔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한 상징이 그 상징이 표상하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 보는 곳에 두고 심지어는 몸과 가까이 지니거나 몸에 새기기까지 하면서 소유하고자 한다.



최애 노래는 Bad Books-Forest Whitaker

사실 나는 이전부터 나도 모르게 상징의 힘을 조금씩 믿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글래스고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동안 특정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듣고 특정한 향수를 사서 뿌렸기 때문이다.

러쉬 향수는 무겁지 않기 때문에 어느 계절에나 뿌리기 좋다


이제 나는 그 노래들을 듣거나 그 향수를 뿌리면 자연히 글래스고의 날들이 생각이 난다. 글래스고에서 보냈던 소중한 날들이 그냥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 같으니 그 순간을 향, 노래와 같은 마음에 보관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갔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포르투갈, 프랑스에서 도시마다 모은 자석



그리고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그 도시를 나타내는 자석을 모았고, 벌써 20개가 넘는 자석을 모았다. 

그 자석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도시를 떠올리고 그 때의 기분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삶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해서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버틴다고들 한다. 

소중했던 순간들은 짧기에 그 순간을 표상하는 상징을 지녔을 때 그 순간이 영원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기념품 가게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상징을 믿게 됐다. 그리고 그 힘을 믿는 사람에게만 상징의 힘이 발휘될 수 있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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