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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생활 Mar 13. 2022

어떤 풍경은 틀 안에서 볼 때 더 아름다우니까

탁 트인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틀 틈새로 보이는 풍경들 

<ⓒ 2021. 이상생활. All rights reserved>

여행 에세이, 두 번째 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종종 눈앞에 가린 것 하나 없이 탁 트인 풍경을 그리워하곤 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차를 타고 멀리멀리 떠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빌딩이 보이지 않는 산, 바다를 눈에 담고 다시 돌아온다. 


도시에 살면 빽빽한 빌딩 사이에 가려 먼 경치를 보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도시의 삶이 좋다. 도시에서는 경치를 다양한 틀에 담아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Ayr)의 번즈 기념공원 / 글래스고 알렉산드라 공원

 그냥 봤다면 지나쳤을 풍경을 어떤 작은 창을 통해 엿보듯 보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런 비유를 들어볼까. 풍경을 어떤 틀 안에 가두면 마치 빽빽한 글 속에 노란 형광펜을 칠한 것처럼 더욱 강조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더 집중해서, 그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감상할 수 있다. 




른 세계로의 통로, 클로즈 (close) 


에든버러 칼튼 힐의 건물 사이로 본 하늘


스코틀랜드에서 5개월 정도 살면서 다양한 도시를 여행했는데 에든버러만 7번을 갔다. 그만큼 내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에든버러 풍경은 어떻게 봐도 아름답지만 도시 풍경을 골목길 사이로, 창 사이로 볼 때는 더욱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MILNE'S COURT


에든버러에서는 건물 사이사이에 뻥 뚫린 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길이 나오고 오르막 또는 내리막 계단이 나와서 다른 높이의 큰 길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길을 빙 둘러 나가지 않고도 다른 길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름길인 셈이다. 


OLD FISHMARKET CLOSE

이 골목길들은 스코틀랜드에서 ‘close’또는 ‘court’라는 단어로 불리며 각 특색에 맞게 특별한 이름이 부여된다. 


클로즈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길로 통하곤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어떤 길로 통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통로 사이로 풍경들이 조금씩 드러날 때 기대감과 설렘은 배가 되곤 한다. 




사 속에서 무너진 성벽 너머


세인트 앤서니 채플

스코틀랜드에서는 부서진 성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벽만 덩그러니 서 있을 때가 많은데, 그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볼 때, 하늘의 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세인트앤드루스 캐슬



몇백 년 전 역사 속에서 무너져 이제는 골격만 남은 성을 보면 그 성이 무너지기 전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였을 가구들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원래는 큰 성의 창문이었을 하나의 틀을 통해서 그 뒤의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조금은 신비로운 일이다. 






문 밖, 친숙하거나 낯선 풍경들

포트윌리엄 숙소, 카페에서 본 풍경 
엘리펀트 카페 창문으로 보이는 에든버러

창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틀 중 하나이다. 경치가 좋은 곳이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아 해가 지는 것,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주 정적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 에세이, 두 번째 편


그 풍경과 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실내의 공기를 쐬고 있는 나는 그와 아주 멀리 떨어진 관객이 되곤 한다.



비행기, 기차 등 여행 중에 창문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조금 더 다이나믹하다.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배가 된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풍경은 또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풍경을 되감기 해서 보는 것임에도 조금 지친 몸과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보는 풍경은 이전과 같지 않다. 그래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풍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잠을 청하곤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의 그 기분이 그리워 다시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싼다. 

  

스털링 월레스 모뉴먼트 꼭대기층

아름다운 풍경을 오롯이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 세상은 겹겹이 볼 때 더욱 아름답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부서진 성의 창문, 울타리 등은 하나의 멋진 액자가 되어 그 순간뿐인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나와 풍경 사이에 있는 것들을 전부 치울 필요는 없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풍경을 내다보는 하나의 창이 되고 프레임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멋진 작품으로 남게 될 테니 말이다. 




번외


어떤 풍경은 틀이 꼭 필요하다. 울타리 없이 오리를 구경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면..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거실 문 창문틀을 통해 나를 감시하는 에르네스의 모습..ㅋㅋㅋㅋ


울타리를 통해 내려다보았을 때, 화분이 틀에 꼭 맞는다. 마치 한 쌍의 녹차 아이스크림 같다.


자연이 자연 위로 드리워져 하나의 틀이 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자연 위에 올라가는 용감한 사람들도 있다.

(feat. 로렌과 트립)


오래된 성벽의 창문은 사진을 찍을 때 좋은 액자가 된다. 


이런 작은 틈새가 있으면 기어이 머리를 비집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게 된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틈 잘못이다. 


런던아이는 기막힌 액자가 되어 런던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담는다.


웨스트민스터 애비에서 나가는 길. 창문만으로도 작품이 된다. 


거울은 풍경을 반사하는 좋은 틀이다. 이 흥미로운 인테리어 구조를 더 잘 담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술관의 통로는 작품의 액자 밖의 또 다른 액자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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