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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pr 29. 2021

휴먼여정체에 윤며드는 외국인들을 바라보며

"저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돼요?"

1. ABC Oscar Acceptance Speech (Youtube, 자막포함)


"Am I saying right?"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트로피를 손에 쥐고 오스카의 무대를 내려오며 허공에 질문을 던진다. 브래드피트에게 농담을 던지고,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외국인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리고, 여우조연상 후보 배우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자신은 한국에서 이미 잘 알려진 중견배우임을 은연 알리고,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 기쁘다는 개인사적 소감까지, 마치 정교하게 짜여진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웃음과 풍자와 감동까지 모두 선사한 후에 말이다. 2021 오스카의 최고의 스피치로 찬사를 받을 만큼 인상적인 수상소감,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알아들었냐는 원초적 질문. 이 두 사이의 갭이 웃프도록 크다.


세계 영화페스티벌 시즌에 참가하는 것은 마치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그녀는 지난 일요일 밤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달간 수많은 무대와 인터뷰를 소화했다. 어느 매체 앞에서도 편안하고 당당하게 한국어로 대답했던 봉준호 감독도 멋있었지만, 통역사를 두지 않고 직접 인터뷰어와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어휘 그대로 소통하는 그녀의 행보가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러번이고 멈칫하며 물었다. "저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돼요?"





윤여정씨는 영어 인터뷰에서 여러번이고 버벅거린다. 마치 한국어를 하듯 높낮이 없는 단조로운 톤으로 말하고, 문법에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고, 단어가 생각이 안나 문장 중간에 멈춰버리기도 하고, 문장 중간에 갑자기 문장 처음으로 돌아가 셀프문법교정을 하기도 하고, "Something like that" "You know"와 같은 미사여구로 문장을 흐릿하게 마무리하기도 한다. 통역사 없이도 인터뷰어의 질문을 알아들을 만큼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진 그녀가 자신이 방금 내뱉은 문장의 문법적 완성도를 알아차리지 못할리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 대화 중간에 상대에게 확인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어가 짧다고 사과 아닌 사과를 덧붙이기도 한다.


2. ABC Good Morning America


해외에서 외국어로 서바이벌을 하는 우리에게는 그녀의 그러한 모습이 유난히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가 왜 자꾸 "내 말 알아들어요?"라고 묻고 싶어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모국어의 알고리즘으로 짜여진 생각을 머릿속에서 타국어로 변환하는 동안의 어색한 정적, 쥐어짜듯 한단어 한단어 내뱉다보면 점점 느려지는 말의 속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고 있는지 계속 살피게 되는 눈치, 내가 말하는 중에 상대가 하품을 하거나 인상을 찌뿌릴 때 몰려오는 자괴감까지. 소통에 대한 불안감은 일터에서 뿐 아니라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이를테면 친구들과의 수다나 길 위에서 타인과의 우연한 대화에 까지 확대된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시안들은 자발적으로 본인의 본 성격을 버리고 '조용하고 수줍은'이라는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에 기대어버리기도 한다.




윤여정 배우의 '소통'은 정작 그녀 본인의 걱정과 달리 미국인들을 "윤며들게"하는 그녀의 매력포인트이다. 그들이 그녀의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고 평가해서도, 어느 원색적인 코미디 프로에 희화될 수 있을만큼 못한다고 무시해서도 아니다. 아니, 그런 '영어실력'은 잣대에 끼지도 못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소통이란, 자기 자신을 보여줄 줄 아는 능력이다. 이미 윤식당과 윤스테이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대중은 예능에 최적화된 그녀의 입담과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잘 알고 있다. 다정하면서도 거침이 없고 친숙하면서도 우아한 그녀의 말투에 "휴먼여정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이번 글로벌 영화계에서 그녀가 보여준 진짜 소통실력은 이 휴먼여정체를 문화와 언어가 다른 해외무대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었던 데에 있다. 


3. 윤식당 방송캡쳐


예컨대, '자신감'이란 떨지 않고 수려하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떨림을 "Okay, let me put myself together(잠깐, 마음 좀 진정시킬게요)"라고 유쾌하게 수긍할 수 있는 단단함임을, '배려'란 오스카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모르고 관심도 없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최대한 누구나 듣기에 즐겁고 간결하게 개인적 소회를 전할 줄 아는 센스임을, '유머'란 시상자 브레드피트가 사실 미나리 영화 제작의 '갑오브 갑'이었다는 것, 혹은 여우조연상 경쟁후보 글렌 클로스에게는 이번이 8째 오스카 도전이었다는 것과 같은 조금은 어색한 진실들을 콕 찝어 일말의 긴장감조차 풀어낼 수 있는 애정어린 시선임을. 단 5분간의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이와 같은 휴먼여정체의 엑기스, 즉 그녀의 진짜 삶의 태도를 모두 전달했던 것이다.


Extra TV 인터뷰 장면 (냄새를 묻는 장면은 현재 편집되었다)


하물며 요즘 욕을 많이 먹고 있는 Extra TV의 리포터도 윤여정 배우가 재치있게 답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터뷰이라고 보지 않았다면 브래드피트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냐와 같은 레딧(reddit, 네이트판과 유사한 미국의 포럼플랫폼)의 밈(meme)에 나올법한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유불문 그녀는 여전히 욕먹을만하다)




이번 세계 영화 페스티벌 시즌에서 배우 윤여정이라는 캐릭터의 재발견은 마치 어느 액션영화의 서늘한 반전만큼이나 통쾌하고 신선했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쌓은 덕분에 한국어로 길게 대답하며 해외매체들을 귀쫑긋 세우고 기다리게 하거나 아카데미는 '로컬들의 축제'라고 신랄하게 깔 수 있었던 봉준호 감독과 달리, 윤여정 배우는 외국인들의 눈에 신인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며, 그녀가 미나리에서 연기한 '이제 막 미국으로 이민온 아시아 할머니의 캐릭터'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굳이 떨림과 수고를 무릅쓰고서 통역사를 쓰지 않고 직접 자신을 드러내기를 택했는지 모른다. 최근 아시안 노년층을 향한 인종차별 공격이 매일같이 발생하는 미국 땅을 밟고 서서, 자신을 향한 아카데미의 선택이 마치 '미국인들이 한국배우를 대접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이  할머니뻘 한국 배우의 소감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우리는 윤여정씨의 대답을 흥미롭게 듣는 인터뷰어들과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 또한 어렴풋이나마 익숙히 알고 있다. 간혹 우리는 영어문장을 완성시키는데에만 집중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사이다식 직설발언을 해서 듣는 사람들을 빵터지게 할 때가 있고, 상대방이 자꾸 인상을 찌푸리길래 '내 말이 이해가 안되요?'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고, 방금 정말 중요한 말을 해줘서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라고 뜻밖의 고백을 듣기도 하고, 오히려 일터에서는 '아주 쉽고 간단하게 얘기해줘서 같이 일하기 좋다'라는 동료의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귀를 의식하면서도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장 가혹한 영어 문법선생님이자 평론가임을 알고 있다.




한 달 전, 아틀란타 한인 총격사건과 미국의 아시안 인종차별에 대한 소회를 적었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더 이상 TV속 한국 문화 상품의 인기와 메이드인 코리아의 대중화 속에 개인의 안전과 모든 아시안의 긍정적 정체성을 투영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스스로 내 안의 아시안이라는 정체성과 그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을 분명히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을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나만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당당하게 보여주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것은 내가 한때 믿었던 것처럼 그들 속에 잠재된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개인, 더 나아가 아시안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계기, 그래서 아시안을 어느 미술관 벽 구석의 그림이나 마사지샵의 데코가 아니라 그들 곁에 살아 숨쉬고, 배울점이 있고, 몰랐던 놀라운 면모가 있는 다채로운 존재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오스카 무대를 찾은 배우 윤여정은 여전히 'TV속 인기 한국 문화 상품'이긴 했다. 그러나, 내가 지구 반대편 한국 TV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그녀의 솔직하고 경쾌한 모습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대로 미국 TV에 보여주는 순간, 그녀는 지난 나의 혼란스러운 다짐을 뚜렷하게 세워준 내 마음의 답안지가 되었다.


NBC


인간 윤여정. 어떻게 한국인다우면서 글로벌할 수 있는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오늘도 해외에서 자아정체성 혼란을 겪는 우리들에게 쿨하게 보여주고 오스카 스웨그 백과 함께 홀연히 떠나셨다. "I am not that into Hollywood. (나는 별로 할리우드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진출처 

- 커버사진, 사진 1: ABC Acceptance Seepch 영상캡처 

- 사진 2: https://www.youtube.com/watch?v=zFBRuIfSqxo

- 사진 4: https://www.youtube.com/watch?v=nwIAsW2Jf5k

- 사진 5: https://www.nbcnews.com/news/asian-america/k-grandma-youn-yuh-jung-just-not-hollywood-n126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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