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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pr 23. 2021

미국 병원 방문기 (feat. 창피함 폭발)

미국의 악명높은 의료시스템에 외국인이 대처하는 자세

    타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 단지 외롭거나 우리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다. 몸과 정신이 가장 나약해져 있을 때, 공교롭게도 가장 복잡하고도 낯선 '의료' 시스템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살더라도 의료계에 종사하거나 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할 일이 있지 않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의 분위기나 병원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어렵고 무섭게 느낄 것이다.


    미국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한국과 얼마나 다르고 혼란스러운 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쯤에서 내 인생의 가장 창피한 기억, 미국에서의 첫 병원 경험을 풀어놓아야 할 것 같다.



    약 10여 년 전, 뉴욕생활 초보 시절에 별안간 방광염에 걸린 적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이 마려운 그 병 말이다. 문란한 여성들의 질병이라는 오명때문에 어디에 쉽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아니, 차라리 문란하게 놀다가 걸렸으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 같다. 미국에서 병원에 가는 것도 무서웠거니와 이 병을 향한 복잡한 심정 때문에 몇 일 동안이나 스스로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어느 평일 오후, 뉴욕 월스트리트의 지하철역에서 하염없이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수트차림의 아저씨들 옆에서 노상방뇨를 심각하게 고민할만큼 통증을 겪고서야 비로소 정말 병원에 가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인생 최고의 참을성을 득도했던 것 같다.



병원 예약하기

    상황이 이러니 병원 선택의 우선순위는 집에서의 접근성이었다. 나는 무조건 걸어가야만 했다. 나의 방광은 더이상 택시를 기다릴 힘도, 지하철역의 계단을 오를 힘도 없었다. 구글지도 검색을 하니 여성의원 다섯 군데가 도보 10분 내에 있었다.

    두번째는 예약 가능 여부였다. 미국의 많은 개인 의원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이며 기본 몇 주는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다 대단한 명의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픈건지, 의사들이 부족한건지, 아니면 시스템이 느린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지난 10년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의료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개인 의원의 90%의 경우 전화를 건 날로부터 적어도 2주는 뒤에야 예약이 가능하다. 얼마전 한국에 갔을 때 같이 놀던 언니가 별안간 "요즘 피부가 계속 말썽이네. 기다려봐 나 피부과좀 갔다올게." 하고 편의점 가듯 피부과를 30분만에 다녀오는 것을 보면서 역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미국 의사들은 새로운 환자들을 받지 않는 기간이 있다. 보통 의원 웹사이트나 자신이 가입한 건강보험 의사 안내 책자 (in-network doctors directory)를 통해서 "accepting new patients(신규환자 접수 가능)" 이라는 문구로 확인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근처에 있는 다섯명의 부인과 의사 중 세 명이 나의 보험과 연계되어 있었고, 그 중 두 명이 신규 환자를 받고 있었으며 그 둘 중 한 의원만이 내가 상황의 절박함을 호소하자 다음날 오라며 예약을 잡아주었다.



병원 체크인하기 + 보험

    다음날 의원을 찾았다. 불과 10분의 도보였지만,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멀고 고통스러운 여정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나의 상태는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 의원은 푸르른 워싱턴 스퀘어를 바라보고 있는 브라운스톤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시원하게 솟아 오르는 분수 주변을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공원을 등지고 클래식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는 건물 앞에 서니 마치 천국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허나 그 천국의 내부는 사뭇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암울한 분위기가 훅하고 나를 압도했다. 일부러 고급스러운 바깥 운치와 대조를 이루려고 한듯 리셉션은 마치 8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구식 테크놀로지와 우중충한 벽지 및 낡은 가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미 화장실로 뛰쳐가고 싶은 통증에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아니 이런 시설로 어떻게 맨하탄의 노른자 땅에서 장사를 할 수 있지?' 하고 의아해 했다.

    추후에 다른 의원들도 방문해보고 또 먼 훗날 의료관련 업종에 일을 하게 되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의 많은 개인 의원들이 구식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정보법과 관련한 수많은 규제들 때문에 의료계 자체가 새로운 정보기술을 받아들이는데에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접수 데스크에 뒷통수가 큰 모니터 뒤에서 한 스태프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대충 나의 존재를 인지한뒤 다짜고짜 보험카드를 요구했다. 그럴리 없었겠지만 보험이 없다고 하면 내쫓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내쫓진 않았겠지만 그냥 치료비를 엄청나게 부과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당연하게 여겼던게 바로 국가 의료보험이다. 나의 이름 및 생년월일 입력만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국가의료보험은 내가 어느 병원을 가든, 어느 의사를 만나든 그곳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니, 그 느낌이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반면 미국의 수많은 민영보험은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치료 과정에, 그리고 치료비에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 변수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면 아마 책한권을 따로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기본적인 것만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의사들 뿐 아니라 간호사, 검사를 진행하는 기술자들(technicians)들이 모두 특정 보험과 연계되어 있다. 이 연계 여부를 인-네트워크(in-network) vs 아웃-오브-네트워크 (out-of-network)로 표현한다. 의료진들은 여러 보험과 연계할 수 있지만, 아무리 내 보험이 메이저 회사에서 만들어 진 것이더라도 그 의사가 그 보험의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예약을 할때 미리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하며, 병원에 도착해서도 여러장의 서류에 보험 및 각종 신상 정보를 따로 적어내야 한다. 같은 보험 내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급 (tier)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급에 따라서 보험이 어떤 종류의 치료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치료비를 지원해주는지, 심지어 같은 약이라도 어떤 브랜드의 약을 보험지원 처리해주는지가 달라진다. 물론 미국에도 국가보험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라기 보다는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병원 직원들이 처리하는 수많은 보험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의사뿐 아니라 모든 의료진들이 다 다른 보험 연계관계를 맺고있다는 사실은 꽤 무서운 일이다. 일상적 진료를 위한 개인 의원 방문에서 이런 걱정은 크게 할 필요 없지만, 큰 대학병원이나 수술이나 다양한 종류의 검사를 요구하는 치료과정을 겪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의 보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의료진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잠깐 치료나 검사의 일부를 도왔다거나, 나의 혈액샘플이 어떤 이유로 나의 보험 네트워크가 인정해주지 않는 실험실(lab)로 보내져 분석되는 경우 가뜩이나 비싼 진료비를 몇배로 더 부풀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진료 및 검사 받기 

    마침내 만난 의사는 아주 긴 이름을 가진 중년 러시아여성이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과 매부리코, 짙은 흑발에 강한 러시안 억양으로 나를 맞이했고, 읽을 수 없는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가뜩이나 쫄아있던 나는 그녀의 첫인상에 얼어버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의사는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질문을 하면 할수록 점점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억양도 억양이거니와 그녀가 쓰는 의학용어들이 낯설었다.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질문을 되묻는 대신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나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어가자 그녀는 상황파악을 한듯, 큰 숨을 쉬더니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다. 그리곤 모든 점잖은 의학용어를 버리고 3살짜리 아이에게 말하듯 물어보기 시작했다. 소변(urine) 대신 오줌(peepee), 대변(feces) 대신 응아(poop), 자궁(uterus)대신 아가집(baby home)을 써가면서 말이다. 내가 신문이나 백과사전 위에서 납작하게 누운채로만 본 단어들이 방금 만난 무섭게 생긴 의사의 낯선 목소리로 튀어나오니 그저 머리가 하얘졌고, 자존심은 바닥을 치다못해 바닥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언어도 상황도 모든게 낯선 공간에서 외국인은 종종 서글픈 광대가 된 느낌에 빠진다.


    이 만남의 클라이맥스는 인터뷰를 마친 뒤 의사가 검사를 직접 하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나에게 검사를 위해 가운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하더니 곧바로 진찰실을 떠났다. '왜 나갔지? 다른 사람이 들어오나? 가운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데 가운이 어딨지? 가운을 들고오는모양인가?' 이해가 안갔으면 그자리에서 얼른 물어보았어야 하는데 이미 잔뜩 주눅이 들었던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보통 검사를 받을 때에는 탈의실로 안내를 받고 찜질방에서 입는 옷과 같은 것들을 제공받지 않았던가. 옷장도, 옷가지도 없이 텅 빈 하얀 진료실에서 나는 당황한 채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적이 흘렀고 5분이 지나도 의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한테 뭘 기대하는거지? 뭘하라는거지?' 곧 다시 마려워 올 것이고 이 악몽을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선 내가 무슨 행동이든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의사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하얗게 질렸다. 내가 진찰대 위에서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채 하얗게 벌거벗은 채로 엉거주춤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소리를 쳤다. "아니 뭐하는거에요! 여기 가운 입어야죠!"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따라가니 내 엉덩이 아래에 진찰대에 아주 얇은 1회용 가운이 납작하게 접혀 있었다. 너무 내 엉덩이 아래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 알아차리지 못한 그 종이조각이 가운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외침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연민과 충격에 더 가까웠다. 아마 그런 환자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즉시 직접 가운을 꺼내들어 나에게 씌워주었다. 그녀가 러시안 사관선생님이 아니라 시골 할머니와 같은 태도로 바뀐 것은 그 때 부터였다. 3살 손녀한테 말하는 듯한 그 말투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녀는 복용해야할 약과 유의사항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며 진심으로 나의 쾌유를 빌었다.




    미국에서의 첫 병원 방문경험은 나를 엄청나게 겸허하게 만들어주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한 상황에서 겪는 낯선 상황은 사실 그 어떤 오만한 사람도 테레사수녀님으로 변신시켜줄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 자신의 착각으로 이방인 앞에서 홀딱 벗은 몸을 내보이는 상황에선 말이다.


    단지 방광염이 증폭시키는 동물적 충동(화장실에 가야한다...)때문에만 내가 나약해 졌던 것은 아니다. 보험 약관을 확인하는 일,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 나를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를 검색하는 일,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보험이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암시하는 진료비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일은 이미 병원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환자들을 녹초로 만들어 버린다.


    병원 안에서는 또 어떠한가, 분명하고 간결하게 나의 증상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의사들이 나의 아무리 하찮은 설명 속에서도 예리하게 심각한 패턴을 발견하고 '잠깐만요, 3일전에 커피를 마시고 머리가 아팠다는 그 얘기. 아주 중요한 지적이에요.' 따위와 같은 전문가적인 분석을 기대하며 마치 일기쓰듯 의식의 흐름대로 겪고 있는 모든 증상을 묘사하곤 한다. 점술가들이나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들은 그런 세세한 묘사를 반길지 몰라도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의사들은 늘 시간에 쫓기고 있다. 복잡한 보험 시스템에 시달리는 것은 비단 환자들만이 아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의사들은 보험회사를 상대로 왜 특정 치료가 이 환자에게 필요한지, 왜 약 A가 아니라 약 B를 처방해야하는지를 항변해야 하거나 보험의 약관대로 처방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을 prior authorization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구구절절 이야기하는데 시간을 쓰다보면 제한된 진료 시간 동안 의사들의 진단에 필요한 더 중요한 질문이나 검사를 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여자 환자들은 증상을 효율적으로 설명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어야 할지 모른다. 미국의 한 리서치에 따르면 의사들의 성적 정체성, 의료 지식 및 기술, 성향과 무관하게 여자 환자들의 증상이 과소 평가되거나 신경성으로 오진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치료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그 외의 모든 면들, 예컨대 환자의 경험적 측면과 환자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구조, 수익 방식에 있어 난해하기로(convoluted) 악명높다. 다시 말해,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혹은 영어를 못해서 이해하기 어려운게 아니라, 미국 의료시스템 자체가 이미 어려운 것이다. 그 시스템 속에 깊숙히 있는 전문가들 조차도 시스템의 오직 일부만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환자들의 공포심과 혼란을 이용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어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환자들이 개인의 경제적, 신체적 조건과 보유하고 있는 보험에 따라 겪는 경험도 제각각이므로 누군가에게 확실한 조언을 구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자신감을 타고난 사람 혹은 뻔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낯선 상황에서는 자신의 판단과 욕망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외국인이라서, 영어를 잘 못해서, 경험이 부족해서, 아마도 심각한 병이 아니라서' 라고 내적 조건들을 상기시키며 핑계를 만들어 낸다. 전문가의 말에 수긍할 핑계, 그들의 법칙을 따를 핑계, 의문을 갖지 않을 핑계, 조용히 있을 핑계. 그 모든 핑계들을 살아보고 나니 깨달았다. 특히 병원과 같이 신체적 경제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환경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는 자세를 기르라는 당부는 결국은 미국생활의 전반에 적용되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것은 성급히 가게 매니저나 사장을 찾는 '카렌'과는 다른 문제다.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은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존심 및 두려움을 걷어내고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상황이 부당한것 같이 느껴진다고, 궁금한 게 있다고 나의 목소리를 낼줄 아는 것이며, 그를 통해 겸허하게 적절한 도움을 받거나,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진료 및 의료청구서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 

그럴일이 절대 없으면 좋겠지만, 미국에 잠깐 여행을 왔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든, 미국에 막 이민을 와 의료 문제로 골치를 겪는 경우를 위해서 의료서비스 관련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될 만한 몇가지 팁을 적어보았다. 


병원에 방문하기 전에 미리 노트(agenda)를 작성한다. 노트에는 내가 공유하고 싶은 주요 증상, 증상이 지속된 기간, 내가 예상하는 치료 방법, 의사에게 하고 싶은 질문 3가지 정도를 적는다. 이 준비 자체가 긴장감을 낮춰줄 뿐 아니라, 미리 모르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의사와 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의사와 만났을 때 이 노트를 꺼내서 읽거나 아예 보여주는 것도 당신 뿐 아니라 의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은 상대의 말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요청을 하는 동시에 당신 본인도 훨씬 더 천천히,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하려 노력한다.


부끄러움 없이 모르는 것은 물어본다. "지식의 저주 (Curse of Knowledge)"라는 표현이 있다. 전문가들이 늘 특정 지식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을 힘들어 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의 지식의 수준을 헤아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떠한 환자이건 그 환자에게 상황을 고지해주고 조언을 제시하는 것이 보험 회사 및 의료진들의 주요 책임이자 업무이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므로, 스스로 미리 지레짐작으로 질문을 필터링 하거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이해한 것을 나만의 언어로 상대방한테 다시 들려주면서 재확인한다. 정말 중요하게 확인 사항이라면 방금 들은 답변을 다시 반복해본다.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했으면 한단어 한단어 그대로 (verbatim) 반복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자신의 어휘로 더 쉽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특히 전화상 커뮤니케이션에서 이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이 과정에서 꼭 한번씩은 내가 오해하는 부분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답변 속 오류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능한 모든 것은 문서로 남긴다. 문서가 아니면 메모로 적어달라고 부탁한다. 전화 통화를 싫어하는 밀레니얼세대로서 나는 전화를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이메일이나 온라인채팅을 통한 고객지원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의료관련 기관들이 중요한 업무처리를 전화로만 처리하려고 한다. 문서는 대화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할 수 있고, 예약이나 처방전과 같은 중요 확인 사항들이 논의된 대로 시스템에 제대로 입력되었는지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특히 진료 끝에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과 효능에 대해 설명을 할때 약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약이름을 브랜드가 아닌 성분이름으로 줄줄 외우고 있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의 약 이해도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고, 환자 본인도 스스로 약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야 치료과정이 수월해진다.


섯불리 보험이나 병원에서 날아온 청구서를 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보험 시스템은 의료진, 의사, 약사, 제약회사들이 얽히고 섥힌 매우 복잡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간의 오해나 이해부족으로 가격이 잘못 책정될 수도 있고,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되기 십상이다. 지레 짐작으로 잘 알아보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일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금액에 당황했다면, 지불 마감날짜 (due date)를 확인 후, 침착하게 이해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를 해나가야 한다. 나 역시 간단한 검사, 심지어 주치의 정기검진 (annual checkup)에도 별안간 상상치 못한 금액의 보험 지불 청구서를 받은 경험이 여러번 있고, 그 모두 매우 스트레스 받는 경험이긴 했지만, 유선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Artwork Source:
1. Morning Sun (1951), Edward Hopper
2. Washington Square postcard from the NYPL Digital Collection
3. Soir Belu (1914),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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