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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Mar 15. 2020

코로나의 변주곡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지켜보는 것.


몇 주전, 그러니까 3월 초 내가 힘겹게 서울 방문을 취소할 때만 해도, 미국사회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보는듯 했다. 나의 여행 취소 사실을 알게 된 회사 동료들도 ‘너가 갔으면 못돌아올 수도 있을 뻔했어’라고 심심한 위로를 건낼 뿐이었다. 2월 한달 내내 바이러스는 하루가 다르게 한국사회를 휘몰아 쳤고 치부를 드러냈다. 중국본토에서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나 비위생적인 식문화를 드러낸 반면, 한국에서는 마치 변종된 바이러스가 다른 증상을 일으키듯 종교를 가장한 광신의 암흑 사회와 정치를 향한 불신 가득한 언쟁이라는 전혀 얘기치도 못한 변주곡을 들려주었다. 힘껏 과장되고 격양된 온라인 미디어의 실시간 뉴스와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 나가는 가족 및 친구들의 안부 사이의 극명한 온도차를 멀리서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한국행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혼란스러웠고 고독했다.


사회의 거의 모든 평가는 상대적인 프레임 속에서 더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언더독의 레이스’ 포지션에 더 익숙한 우리 한국 사회가 전례도 벤치마킹도 없이 이 독한 바이러스를 대처하기 위해 수많은 일련의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 그리고 그 가운데 몇가지 실수들이 발생했을 때, 우리 한국인들은 종종 그래왔듯 극도로 자조적이 되었다. 미국에 있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행 비행 티켓을 취소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만 했을 때, 아시아나의 친절 서비스가 허울 뿐이라는 둥, 한국 웹사이트의 사용자 비중심의 UX가 혼선을 빚어낸다는 둥 연신 한국사회로의 성급한 일반화와 비판을 쏟아내었다.


예정대로 한국을 갔었더라면 지난 월요일에 미국에 되돌아 왔을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보건대 그냥 예정대로 갔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같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엔, 어차피 바로 그 지난 월요일이 진정한 미국사회 패닉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판데믹으로 가장 직격타를 맞은 여행업계에 종사하고 있는만큼 나는 가장 먼저 여행 예약 취소 및 변경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주 크고 선명하게 듣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여행 업계의 선두라는 익스피디아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아시아나와 별반 다를바없이 속수 무책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고객들은 직원 연결을 위해 수화기를 두시간이나 붙잡고 있어야 했고,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가도 툭툭 전화가 끊어지기 일쑤고, 에어비엔비와 같은 형태의 개인 숙박시설은 환불이 불가능 하다 했다.


이제 미국은 한국의 케이스와는 달리 현재 헤아릴 수 있는 선례가 많아서 (이란, 이탈리아, 우리나라...) 그 상대적인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을 평가하며 더 선명하게 벌벌 떨고 있다. 그 선명함이란 바이러스가 이곳에서어떤 식으로 변주될지 그 시나리오를 뻔히 안다는 데에 있다. 한국만큼 빠르고 급진적으로 바이러스 테스트를 지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한 개인 및 기업들은 자신이 언젠가 (아니면 이미) 슈퍼 전파의 근원이 될 수도, 그리고 그것을 확인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급격히 빗장을 걸어 잠궜다. 그것은 자연스레 개인 스스로의 안위의 걱정을 넘어서서 가까운 친구마저 불신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마다 위생수칙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서 서로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실내 모임이 위험하다며 약속들을 다 깨고서는비행기 타고 휴양지로 여행을 가는 친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한참 퍼지는 가운데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조심히 저밀집 공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안위를 챙겼던 내 한국 친구 및 가족들의 사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인 것 같다.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기적이 된다. 슈퍼마다 화장실 휴지와 파스타와 생수 따위를 사재기 하는사람들이나, 코로나를 핑계로 인종차별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나 내가 보기엔 결국 매한가지다 (내가 사는지역에서는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만연하다. 슈퍼에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이제 화장지 사기가 힘들다고한다.) 그리고 그런 단면으로 비춰볼 때 이곳의 심리적 공포가 한국사회보다 큰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선진사회가 뒤늦게 바이러스 공포에 합류를 하면서 한국사회는 그 상대적인 프레임 안에서 한국을 재평가하고 있다. 정치적인 이야기에 몹시 서투르고 무지하기에 그저 내가 관찰한 개인들의 모습으로만 본다면, 한국 사람들 참 차분하고 성숙하게 잘 견뎌온 것 같다. 소설 페스트는 위기의 서사 속에서 흔히 떠오를 수 있는 영웅주의를 몇번이고 분명하게 지양하면서 오히려 그 속에서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소소한 것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한 서민의 캐릭터를 칭송한다. 그러한 필자의 강조가 잘 와닿지 않아 깊은인상으로 박혔었는데, 이제는 조금 그 뜻을 알 것만 같다. 나 역시도 자신의 테두리 내에서 다정하고 차분하게 매일을 이어나가는, 사회적 거리를 지키되 인연의 끈을 오히려 더 단단히 쥐어잡는 지인들, 특히 한국의 우리 부모님과 언니, 형부에게서 깊은 영감과 교훈을 얻고 있다.


모든 행사, 컨퍼런스, 축제들이 취소되고, 뮤지엄과 놀이공원이 문을 닫고, 학교가 개강을 미루고, 투자프로젝트들이 셧다운 하는 그야말로 “캔슬”로 가득한 한주의 끝자락에 겸허하게 맞이하는 생일. 애초에 거창하게 챙길 마음도 없었지만, 비까지 세차게 내려 강제 방콕을 당하고 보니 한층 더 차분해지고 연락 하나하나가 참 감사하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소모가 되든 이 끝에 우리 각각의 사회가 치부를 치유하고 개인들은 심신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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