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아틀란타 한인스파 사이에서
봉준호, BTS가 주류 영화와 음악의 아이콘이 되었고, 한국인이 만든 컨텐츠들이 유튜브와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트렌딩을 장식하고, 한국어로 연기한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국 구멍가게에서도 신라면과 김치를 살 수 있고, K-beauty는 이미 주류 뷰티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미국인들은 이제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나를 처음 만나면 북한에서 왔느냐고 묻는 대신, 마치 한국의 지명을 빠싹하게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어느 도시에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이 모든 변화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땅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나의 자부심에도, 그리고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미국사람들의 시선에도 말이다.
아틀란타에서 한인상대 총격 사건을 일으키자마자 두시간 만에 검거된 테러 용의자는 체포 당시 현대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갤럭시 폰으로 스파 마사지샵으로 향하는 경로를 검색하고, 그의 부모는 LG에서 만든 TV로 아들의 검거 뉴스를 접했을지 모른다. 문화의 교류도, 국력과 기업의 기술도, 그 스물한살 짜리가 만들어낸 여덟 발의 총성 앞에서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가 총격을 계획하고 실행한 구역의 많은 마사지샵들은 "해피엔딩"이 짧았다느니, 한국 여성들의 손길이 최고라니, 친절은 하지만 돈을 밝힌다니 등의 음흉하고 디테일한 남성고객들의 구글 리뷰들을 달고 있었다. 소총을 소지한 독실한 크리스쳔인 이 스물한살 백인 남성은 자신이 그 남성고객들 중 하나라고 했다. "성중독에 시달려왔던 그가 굉장히 나쁜 하루를 보낸 끝에 벌인 일이다. 증오범죄가 아니다." "차이나 바이러스"를 풍자한 티셔츠를 자신에 옷장에 고이 걸어두고 출근하여 미디어 앞에 선 이 경찰은 개똥을 선물포장하고 리본까지 다는 듯한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발표를 승인한 애틀란타 경찰 당국의 태도는 그 테러범이 단지 세기적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마사지샵의 아시안 여성들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성적 상징으로 대상화한 전형적인 아시안 여성을 향한 시선과 타인에게 해를 가하면서까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차이나 바이러스"는 이 비극적 사건의 숨겨진 열쇠이다. 트럼프가 미국 사회에 정당화시킨 이 표현은 오랫동안 너무나 은은하고 교묘하고 잠재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 아시안 인종차별문제에 끓는점을 제공한 셈이다. 성이 난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표출할 구체적 구실이자 오랫동안 조용하게 Model Minority로 살아온 아시안들의 분노를 표출할 계기 말이다.
만약 몇 년 전에 이 사건이 벌어졌더라면 나는 이것을 어느 보수적인 주의 희한한 사건으로 치부하고 심리적 거리를 두려 했을지 모른다.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나는 백인 친구들에게 "남부를 한번도 못가봤어. 아시안이 살지 않는 남부의 시골 골짜기에 방문해서 인종차별적 시선이 어떤건지 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아시안을 향해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들을 전설 속의 Big Foot과 같은 존재로 여겼으니 말이다. 아시안들이 주류를 이루며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조차 매일같이 아시안들이 길에서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안다.
그 순진성의 자각 끝에는 일상적으로 겪는 "은은한" 인종차별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Model Minority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과거 나 자신이 낯설게 서 있었다. "한국인 이민자 치고 성공했다"라는 평이 아닌 젊은 인재로서 미국 사회에 동등하고 떳떳하게 자리잡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실은 아시안의 이미지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말 잘듣는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소화시키는 동시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착한 심성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친구로 불리길 기대했다. 이미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백인 남성들의 태도와 언어를 성공한 사람의 자질로 일반화시켜서 "너는 자신감이 부족해보여"라고 말하는 백인 매니저들의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수긍하며 나의 고유의 기질들을 스스로 비난하곤 했다.
한인 친구들과 이야기할때면 이런 "내재화"의 경향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님을 깨닫는다. 노예제도와 시민권, 경찰 폭력 등의 구체적으로 얼룩진 미국 역사 속에서 해석되고 표출되는 흑인 인종차별 이슈와 달리, 아시안 인종차별은 눈을 찣는 행위 혹은 "Model Minority"로 상징되는 몇몇 언사들 외에는 잘 알려진 역사적 충돌이 없었다. 그래서 인종차별 이슈가 대두될 때면 아시안은 이미 "successful enough"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너희는 착하고 순종적이고 셈이 빠르지 않느냐고, 사회가 그렇게 말할 뿐 아니라 아시안들 스스로 그렇게 설득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끓는 점 아래에서 오랫동안 집단 최면에 걸린상태로 지내왔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더 이상 TV속 한국 문화 상품의 인기과 메이드인 코리아의 대중화 속에 내 개인의 안전과 모든 아시안의 긍정적 정체성을 투영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스스로 내 안의 아시안이라는 정체성과 그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을 분명히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을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나만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당당하게 보여주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것은 내가 한때 믿었던 것처럼 그들 속에 잠재된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개인, 더 나아가 아시안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계기, 그래서 아시안을 어느 미술관 벽 구석의 그림이나 마사지샵의 데코가 아니라 그들 곁에 살아숨쉬고, 배울 점이 있고, 몰랐던 놀라운 면모가 있는 다채로운 존재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당장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낯선 분노를 더 힘껏 받아들이고 곱씹어보려 한다.
Cover Photo: Photo by Donny Jia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