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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May 12. 2021

직원의 1/3을 떠나게한 한 테크 기업의 발표

실리콘밸리 뒷담화 <1> 창업자 영웅주의의 위기

실리콘밸리가 쏘아올리고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키워낸 '테크 비즈니스'에서 리더의 비전과 카리스마는 한 기업의 주요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냉철한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차고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고, 박봉과 야근이 잦은 조건에도 인재들을 영입하고 버틸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죠. 사실 어느 단체에서건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겠지만, 테크업계에서 설립자가 기업의 하나의 자산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위험할 정도로 높다고나 할까요. 위워크(WeWork)나 테라노스(Theranos)가 부실경영과 비윤리적인 결정들로 타락의 길을 걸었을 때, 각 회사의 설립자이자 리더였던 애덤 뉴먼(Adam Neuman)과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라는 인물의 성장배경, 성격, 사생활을 사업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삼는 언론기사와 다큐멘터리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모종린 교수는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라는 책을 통해 설립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테크기업 문화를 '창업자 영웅주의'라 일컬으며 그 뿌리를 히피문화에서 찾습니다. 1960년-70년대에 전성기를 이뤘던 히피문화는 기존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창의적 삶을 지향하는 일명 '이단아'를 우상으로 삼는 특징을 보였는데요. 히피문화의 태동지였던 실리콘밸리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연결고리가 정말 탁월한 지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게, 히피문화운동 때 수많은 컬트 단체들이 생겨났던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일명 '섹시하다'고 알려진 몇몇 스타트업들도 컬트를 연상케하는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어요.

    1. 카리스마 넘치고 혁신적인 언사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단아' 리더,

    2.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비전를 팝니다'와 같은 이상주의적 기업 슬로건,

    3. 단체로 옷을 맞춰 입고 밥도 운동도 취미도 같이 공유하는 공동체형 직원복지까지.


(좌) 1970년대 버클리의 One World Family (OWF), (우) 영화 Internship(2013)의 한장면


앞서 예로 든 위워크나 테라노스처럼 세기의 스캔들 수준이 아니고서야 이런 창업자 영웅주의 기업문화가 비판보다는 칭송을 더 많이 받아온 이유는(예: 엘론 머스크), 이것이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리더 자체가 북극성(North Star)이 되니까 직원들이 쉽게 합을 이루고 수많은 의사결정들을 단순화 시킬 수 있는거죠. 기업 내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말할필요도 없고, 소비자들의 구매결정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브랜드보다 리더의 네임밸류가 더 큰 비즈니스를 몇 개 떠올려 보실 수 있을텐데요. 여러분들은 이런 기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곳에서 일하길 꿈꾸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이미 그런 경영자 밑에서 일을 하고 계신가요?


과연 창업자 중심의 기업문화는 지속가능한 것일까요?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으로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혼란의 미국사회에서는 이 질문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 생각하는데요.


최근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군 사례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어느 저명한 테크 리더의 중대 발표

제이슨 프리드(Jason Fried)라는 인물은 창업가이자 테크업계의 인플루엔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엘론 머스크나 스티브잡스 같은 괴팍한 천재 느낌의 리더라기보다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업계에 영감을 주는 '생각리더'(Thought Leader)였어요. 지난 20년 간 리더십 및 테크산업과 관련해서 여러 권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출간했고, 블로그와 트위터, 언론 매체 등 통해서 꾸준히 영향력 있는 생각과 경영 노하우를 공유해왔습니다. 저는 아직 그의 저서는 읽어본적 없으나, 주변 동료들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걸 들어보거나 입소문을 듣고 그의 기고문이나 블로그 포스트를 읽어보기도 했어요. 한마디로, 스타트업계의 정신적 지주랄까요?


그의 팬덤과 영향력은 그가 창업하고 운영해온 B2B 소프트웨어 회사 베이스캠프(Basecamp)를 간접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예컨대 그가 글을 주로 올리는 공간도 회사에서 자체 개발한 이메일 및 블로깅 플랫폼 hey.com이었어요. 바로 이 블로그에서 그는 지난 4월 26일, 자신의 회사의 경영방침에 대한 중대한 발표를 하나 하였는데요. 그리고 이 발표는 일주일만에 회사의 1/3의 직원들이 사표를 내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발표였을까요?



'Basecamp의 변화들'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이 글은 6가지의 새로운 강령을 담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1. 회사 내에서 더 이상 사회적 정치적 논의를 하지 말 것.

        No more societal and political discussions on our company Basecamp account.

    2. 직원 복지 혜택(ex:헬스장 이용할인, 교육비 지원)은 모두 폐지 될 것임

        No more paternalistic* benefits.

        (*그는 헬스나 교육같은 특정 분야에 임의로 보조금을 지급하는걸 가부장적이라고 보았어요)

    3. '위원회(council)'조직 금지.

        No more committees.        

    4. 과거 결정에 집착하지 말것.

        No more lingering or dwelling on past decisions. 

    5. 동료 평가제도(360 reviews) 폐지.

        No more 360 reviews.

    6. 우리의 본분을 잊지 말것. 우리는 사회기여 단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No forgetting what we do here.

(본문은 이 링크를 통해  읽으실수 있어요.)


어떻게 들리나요?

제가 적은 위의 리스트는 꽤 압축되었으니 문맥과 이유가 생략되기는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동안 우리가 흔히 듣고, 믿고, 봐온 유연하고 수평적인 스타트업 문화의 스타일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테크기업의 꽃이라 불릴 수 있는 '직원 복지 혜택'의 폐지를 비롯해서요, AB testing 혹은 experiment라 불리우는 실험적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방식의 가장 대표적 예인 과거 돌아보기 (흔히 "retro"라 칭합니다)와 동료 피드백 교환제도를 비판하는 것도 놀랍죠.


우리 모두 각자 다른 것들을 원합니다. 어떤 것은 살짝 다르고, 어떤 것은 굉장히 다르죠. 그러나 회사는 이런 개인의 차이들을 해결하고, 하나의 관점을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딘가에 갇혀 뺑글뺑글 도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죠.

제이슨 프리드는 위의 서두와 함께 이 강령이 그와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David Heinemeier Hansson, 줄여서 DHH)가 함께 작성한 것이며, 지난 몇 달간 회사가 겪어온 내부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새로운 변화가 직원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죠.


도대체 회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독자들이 궁금해하기가 무섭게 이틀 뒤, 공동창업자 DHH는 이 발표의 후속으로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하는 글을 올립니다. 뒷말 안할테니 이 새 방침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떠나라. 그동안 노고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6개월치의 월급의 퇴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제안까지 덧붙이면서 말이죠.


바로 이 이후 전체 직원 57명의 1/3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들 중에는 Head of Marketing, Head of Design, 그리고 Head of Customer Support등 굵직한 회사 내 리더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이 바로 트위터에 퇴사 선언을 하면서 트위터는 지난 주말 내내 시끌벅쩍해진거죠.





"직원들은 목소리를 내지 말아라."


이 6개 강령이 담긴 리스트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즉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와 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를 전략적으로 강조를 하기라도 하듯 제이슨프리드와 DHH는 관련 강령을 리스트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였죠. 3번의 위원회 구성 금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대놓고 인권 관련(D.E.I Work)일로 위원회를 구성하지 말라고 경고하고요.


작년의 Black Lives Matter운동 이후, 베이스캠프의 직원들은 인권문제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그랬어요. 제가 다녔던 스타트업에서도 많은 미팅과 강연을 통해서 흑인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인권관련 교육을 제공하고, 어떻게 하면 무의식적 인종차별을 고려한 건강한 채용을 할 수 있을지를 제도적으로 논했거든요. 눈이 번쩍 띄이는 경험이었어요. 이러한 주제를 한마디로 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라고 칭하는데요. 베이스캠프의 직원들 역시 자체적으로 D.E.I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고, 흑인 인권에 관한 책이나 도큐멘터리 같은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죠.


D.E.I 구성 요소


이렇게 모두가 인권문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운 가운데, 직원들은 회사에서 돌고 도는 문서 한장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테크전문 온라인 미디어 The Verge에 따르면, 최고의 이름들(The Best Names Ever)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문서는, 2009년부터 시작되어 회사 내의 인사이드 조크처럼 굳어져 전해져왔죠. 내용인 즉슨,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웃긴 고객들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이 명단에 넣어왔다는 거에요. 내부직원들은 그 명단은 백인들의 이름도 포함하지만, 동양인과 흑인의 이름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작년의 흑인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 그리고 올해 아시안 인종차별 범죄(Anti-Asian Hate Crime)까지 겪으며 모두가 예민해져있는 상태에서 직원들은 이 메모를 더 이상 장난으로만 볼수 없었죠.


(이름과 인종차별 하면.. 이것 기억나시나요.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추락당시 한 지역 언론사가 희생자들의 이름 대신 조롱에 가까운 가명을 실수로 내보냈죠.)


직원들은 목소리를 내어 이 전통을 비판하고 폐지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 제안은 마침내 인종차별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장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메모의 폐지를 제안하는 직원들은 '증오의 피라미드 (Pyramid of Hate)'이라 알려진 인종차별적 사고의 모델을 인용하며, 아무리 이 명단이 사소하고 악의 없는 장난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인종의 이름을 조롱하는 것에는 인종차별적 태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관용적 태도는 결국은 인종차별적 폭력, 혹은 제도적 인종 제거(피라미드의 꼭대기)에까지 이르게 놔둘 위험성을 내포한다며 비판을 했죠.


이 사내 토론이 벌어진지 약 한 달 후, 두 창업자는 회사 내부 메신저나 이메일기록에 남아있는 모든 문제가 될 만한 대화내용들을 삭제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 어떤 사회적 정치적 얘기도 회사내부에서 토론하지 말라는 강령을 발표한 것이죠.




생각리더가 말을 멈추고 행동을 보여주었을 때


앞에서 인용한 미디어 The Verge를 비롯 유명 저널리스트 케이시 뉴튼 (Casey Newton)은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이 사건의 진실을 심층 보도하였고, 직원들을 향한 공감이 결여된 두 창업자들의 태도와 블로그의 발표가 얼마나 독단적 결정이었는지가 드러나면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게 됩니다. 두 창업자는 번갈아가며 사과문을 올렸지만 진심어리지 않아보이는 사과와 어설픈 변명으로 더 큰 비판을 받게 되었죠. (그들은 비판을 받을 때마다 사과문을 여러차례 수정/업데이트 해왔어요)


문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Culture is action, not words." (Rework, Jason Fried)


대중의 비판의 강도가 거셌던 이유는 베이스캠프(구:37signals)가 제이슨 프리드가 책과 강연을 통해 전파하고 주장한 테크기업문화와 경영방식, 그 모든 것들의 압축체이자 성공의 증거물이었기 때문이죠. 가장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리워크(ReWork)는 수평적 기업경영과 실험적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자기계발 중심적 기업 문화 등 지금 테크문화가 숭상하고 목표하는 많은 정신들을 제시했고, 2010년 출간 이래로 테크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필수도서처럼 읽혀왔죠. 3년 뒤 출간한 리모트(Remote: Office Not Required)는 재택근무 및 원격근무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인 생각과 전략을 담은 책이었어요. 굳이 길게 설명 안해도 2020년 코로나의 시대에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았을지 감이 잡히시겠죠?  리모트라는 책에서 설파한 것처럼 베이스캠프 직원 모두가 미국 전국에서 원격근무를 했고, 제이슨 프리드는 특히 작년 재택근무를 도입하거나 영구제도로 고려하거나 회사들을 위한 많은 칼럼들을 작성해왔어요.


Jason Fried와 DHH를 비판하는 수많은 트윗중 하나.


제이슨프리드를 정신적 지주로 믿고 그의 책을 바이블처럼 읽어온 그의 팬들은 그의 결정과 직원들을 대한 방식에 실망과 혼란을 표하고 있죠. 그리고 베이스캠프는 하룻밤만에 1/3에 달하는 직원들을 잃었을 뿐더러, 기존 고객은 물론 잠재 고객들까지 소프트웨어의 프라이버시 정책 및 보안까지 의심하게 되는 등, 치명적인 결과를 안게 된거죠.




<비판 1> 자가당착: 리더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굉장한 일을 해내려면, 내가 이 우주 어딘가에 작게라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중요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느낌이 들게요." (Rework, Jason Fried)
“To do great work, you need to feel that you're making a difference. That you're putting a meaningful dent in the universe. That you are part of something important.” (Rework, Jason Fried)


"[열심히 일을 하는 것보다,] 고개를 들고 "왜 그래야하지?"라고 묻는게 더 어렵습니다." (DHH)


제이슨프리드와 DHH는 저서를 통해서 직원들의 오너십과 주체적 사고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해왔습니다. 직원들이 자신들이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일하고, 그래서 리더들은 원격근무제도같은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자체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더 나은 사내문화를 만들기 위해 토론하고, 회사의 자기검열을 제시한 이 직원이야 말로 그들이 설파한대로 회사에 대한 오너십을 가지고 "왜?"라고 물었던 것 아닐까요? 그들 나름의 판단에서는 이것이 기업경영에 중요한 주제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물론 회사경영에서 효율적 업무문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직원들이 업무와 관련없는 논쟁에 빠져 시간 내에 일을 완수하지 못하거나 업무의 질이 낮아진다면,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리더의 당연한 임무이겠지요. 두 창업자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직원들이 왜 자진해서 위원회까지 조직하면서 인권문제를 논하는지 그들의 걱정을 들어볼수도 있었고, 사내교육을 고려해볼 수도 있었고, 특정 문제 인물들을 따로 인사평가를 해서 조취를 취했을수도 있었겠죠. 이러한 점진적인 해결안을 놔두고 두 창업자는 많은 직원들을 떠나게 할만큼 논쟁적인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지요. 심지어 모든 직원들은 이 발표를 미리 들은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위에서 읽은 공개적인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서 같이 알게 된거에요.


회사 안팎에서 "비저너리"로서 방향과 해결책을 제시해오는데에만 익숙해진 두 사람은 어쩌면 갈등을 해결하는 법, 자신을 믿고 따라와주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비판을 듣는 법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창업자 영웅주의 기업문화의 잠재적 취약점이기도 하지요.





<비판 2> 무엇이 정치적, 사회적인건데요?


그런데 과연 무엇이 업무와 관련이 있고 없고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정치적 사회적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가 있을까요? 직원들의 논쟁이 너무나도 소모적이어서 회사의 업무의 질을 저해했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감성이 바뀌고, [인권에 대한] 이해가 바뀐 만큼, 오늘날 많은 분들이 [문제의 명단에 대해] 우려를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조금더 일찍 발견하고 조취를 취하지 못한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 그래도 이제 우리가 조금 더 분명한 비전을 갖게 되었으니, 이건 발전인거죠!" (DHH)


그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리더들은 영영 이 명단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거란 말인데요. 그렇다면 그들은 오히려 명단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더 "분명한 비전"을 갖도록 도와준 직원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것 아닐까요?


더군다나 제이슨 프리드는 평소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테크리더로도 잘 알려졌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에는 사내 다양성에 대한 주제를 Inc에 기고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었죠.


"우리 회사는 대부분이 백인남성입니다. 그럴려고 그런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계속 나와 비슷한 사람을 뽑아온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구인공고를 이렇게 개선했어요. 우리 베이스캠프는 소외받거나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사회적 집단 출신의 지원자분들께 많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다양한 배경, 경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인 강하고 다채로운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당신이 커리어의 최고의 업무를 해낼 수 있기 위한 지지와 포용을 보여주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채로운 팀을 구성하기 위해 채용공고에서부터 면접방식에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그였지만, 정작 그렇게 뽑힌 다채로운 구성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그는 그들을 밀어내고 만거죠.


이제 우리는 개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모든 주제가 곧 정치적 발언이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저는 지인분의 창업 기념 선물을 해드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다른 지인분과 고민하다가 서로 의도치 않게 성차별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된 적도 있는걸요. ("요즘 여자직원들은 왜 커피를 안타는지 모르겠어!" 라고 그분이 말씀하셨죠.)


혹자는 이렇게 된 사회가 피곤하고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시안으로서, 여성으로서,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의 minority편에 서게 되는 저조차도 가끔 이런 토론들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걸요.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소외집단들의 관점이나 그들의 경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행동과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난 세월을 상쇄시킬 수 있을만큼의 예민한 관찰과 성찰이 필요할 테니까요.




우리는 히피문화운동에서 촉발한 수많은 단체집단들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거나, 집단 자살, 범죄와 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거나, 활동시기 내내 '컬트'라고 눈살을 받았던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오컬트집단이 아니고서야 히피단체들은 인간성 회복, 자연친화적 삶, 공동체주의와 같은 선의로 시작되었죠. 상상 속에서 피어오른 이상을 자신의 귀에 아름답게 속삭이는 리더를 찬양하고,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공동체 활동, 이를테면 농경재배나 가내수공업을 매일 성실하게 살았구요. 하지만 그들은 이 낙원에 갇혀 정작 이상을 오랫동안 지켜내고 성장시키기 위한 성찰은 하지 못한채 오토파일럿모드로 자신들의 몸과 영혼을 맡겨버렸죠. 리더의 카리스마있는 목소리와 공동체의 엄격한 법칙 사이에서 성찰의 시간은 소멸되고 말았거든요.


이번 베이스캠프의 해프닝은 다변화의 과정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사업을 일구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리더의 고충과 새로운 도전과제를 보여줍니다. 제이슨프리드가 쓴것과 같은 명언 가득한 책과 감명깊은 강연을 통해 이상적인 가치들에 대해 배우고 그것들을 지향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그 일련의 가치들은 다양성의 보장 vs 효율성의 극대화, 직원의 주인의식 vs 주제 파악과 같은 긴장의 상태로 매일의 업무 속에서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며, 그것을 헤쳐나가는 행동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십 발휘의 순간인 것이죠. 제이슨 프리드는 리더로서 자가당착적인 행동을 보이고, 직원은 물론 대중들에게 약속한 이상적 기업문화, 즉 다채롭고 존중이 가득한 문화를 실현시키는데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비난받고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역시 창업자 영웅주의 문화의 한 희생자 일지 몰라요.


이번 사례는 리더들 뿐 아니라, 회사와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기업의 리더가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기업의 슬로건과 브랜딩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잘 맞아 떨어져서, 혹은 딱보기에도 쿨하고 독특해보여서 그 조직에 일부가 되기를 소망하곤 합니다. 현재 욕망되어지는 많은 신생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영웅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을거구요. 흔히 요즘 드라마 신에 많이 나오잖아요. 아침에 한강뷰가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런닝머신을 타며 뉴스를 읽는 젊은 천재 자수성가, 획기적인 기술과 친환경적 이상을 결합한 제품을 당찬 목소리로 대중들에게 발표하고 큰 박수를 받는 기획전략실 실장, 통유리와 네온사인, 밝고 편해보이는 원목가구들 사이에서 야근을 하는 너드형 엔지니어 캐릭터까지.


요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스타트업의 성공한 리더로 그려지곤 합니다.


이 모든 시그널과 욕망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날카롭게 그 욕망의 대상이 되는 기업을, 그리고 인물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기업이 과연 자신들이 '주장'하는 그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일상의 문화와 인물들을 갖추고 있는지, 기업 대표의 명성이 직원들의 희생과 음소거된 아이디어로 쌓아져 올린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설사 그 리더가 자리를 떠나게 된다 해도 믿고 나의 재능을 부을 수 있는 탄탄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Jason Fried's Best Advice After 20 Years of Running a Remote Workforce

1. One World Family

2. Jason Fried on New York Times

3. Jason Fried on WSJ

4. D.E.I 구성요소

5. 아시아나 추락 보도 장면

6. 드라마 스타트업, 시지푸스, 홀로러브 장면 중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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