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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04. 2021

[여행의 끝] 여행 가방 풀듯 마음도 풀어봐요.

휴가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꼭 쥐어 짜듯 일요일 자정을 임박해 여행에서 돌아오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의 치명적 단점은 자정의 허기짐, 월요일 아침에 대한 두려움, 몇주째 방치된 집에서 발견된 부재의 상처같은 것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큼큼한 집냄새, 먼지가 소복히 쌓인 나무 바닥, 누렇게 기죽어있는 식물들, 밥알이 말라붙은 밥그릇 앞에 서노라면, 마법을 잃기 무섭게 허겁지겁 무도회에서 돌아온 신데렐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남편과 나, 두명의 신데렐라는 힘겹게 서로에 대한 인내심을 꼭 쥔채로 잠을 청하곤 했다.


사실, 여행의 끝맺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별에 대한 예행 연습이나 마찬가지다. 귀한 시간을 내어 미국을 찾아준 언니와 포틀랜드 여행을 할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이나마 우리의 마음과 인스타그램 피드를 호화롭게 채워준 여행지를 떠날 때, 우리는 우리의 일부와도 작별인사를 고하게 된다. 아리조나의 뜨거운 사막에, 하와이의 시원한 파도에, 스페인의 낭만적인 작은 마을에, 오레건의 쓸쓸한 바다에 나는 나의 조각들을 남겨두고 왔다. 영원할 것처럼 그 장소와 시간과 만남에 설레어하던 내가, 그리고 그날 열렬히 사랑했던 여행동무가 그 멀고 먼 여행지에 남아 있다.


Portland


어쩌면 우리는 그 이별이 너무 슬퍼 할 수 있는 최대한 여행의 끝을 미루고 미뤄 일요일 자정에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던 건지 모른다. 마치 바로 회사로 복직해 익숙한 종류의 스트레스로 마음을 찔러대면  그 슬픔을 못 느낄줄 알고 말이다.


여행 다녀온 짐을 풀고 세탁을 하듯이, 집안을 환기시키고 청소를 하듯이, 낯선 길 위의 기억들과 롤러코스터 타듯 우여곡절의 곡선을 그린 마음도 풀고 정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짐을 푸는 시간을 여행의 일부이자 종착지로 여기기로 했다. 짐을 잔뜩 끌고 문을 열었을 때 나의 집 역시 하나의 여행 장소인냥 잠깐이나마 낯설게 바라보고, 호텔에 체크인하듯 여행에 챙겨간 물건과 기념품들을 제자리에 놓아두는 행위를 조금 더 진중하게 했다. 사진을 정리하고 기록을 읽어보며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감사할 것은 무엇인지, 여행으로 인해 새롭게 얻은 욕망은 무엇인지를 새로 적었다.


한마디로 별 거창한 것을 한건 아니었다. 여행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과거로 밀어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내 마음에 휘저어낸 변화를 창조의 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추가 단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단지 가장 큰 변화라면 마침내 신데렐라 마인드셋을 포기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 우리는 자정이 아닌 오후 2시에 집에 도착하였을 뿐 아니라, 연휴 다음날 하루 더 월차를 내어 여행지에서 그랬듯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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