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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pr 25. 2023

엄마는 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엄마라는 이방인을 이야기하는 <The Joy Luck Club>

  

영화 <The Joy Luck Club>의 한 장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젊은 여성 준June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의 이복 자매들이 엄마의 고향인 중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의 오랜 친구들로부터 듣게 된다. 충격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엄마의 친구들은 준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 가서 너의 이복 자매들을 만나고 오면 어떨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네가 그녀들에게 알려주렴.” 준은 허탈한 목소리로 답한다. “제가 뭘 알려줄 수 있겠어요. 저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걸요.” 엄마와 평생 지지고 볶고 살았으면서도 준에게 엄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과 같았다.  





‘이방인’이라는 단어에는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농축되어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해’ ‘너는 우리와 좀 다른 것 같아’라고 경계를 긋는 듯한 그런 차가운 시선 말이다. 그래서 타지에 터전을 잡은 이방인인 이민자들은 자식에게 같은 아픔을 대물려 주지 않기 위해 더 철저히 양육하고 더 치열하게 일한다. 나의 자식만큼은 당당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방인’이라는 딱지가 이마에 붙고 떼어지는 여부는 지극히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으며 그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타지로 이주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변화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용감하고 능동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으며 영어밖에 할 줄 모르고 아시아 대륙에는 발을 들인 적이 없는 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피부색과 눈 모양이 백인의 것이 아니라면 저 시골의 어느 백인 노파로부터 ‘너는 원래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는 질문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되는 어린 이민자 2세들은 많은 경우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모를 향한 원망 내지 수치심으로 표현한다. 부모의 모국어를 배우기를 거부하고, 부모의 거친 억양과 초라한 어휘를 부끄러워하고, 부모가 만들어주는 고향식 음식의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이다. 진짜 이방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내 부모라고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엄마의 오랜 친구들에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The Joy Luck Club>의 여주인공 준의 모습에는 원작자 에이미 탄Amy Tan의 지극히 자전적인 고백이 담겨있다. 정말이지 오랜 시간 동안 에이미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자식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완벽한 미국인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부모의 모국의 문화적 유산을 감사하게 물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전형적인 아시안 이민 1세대 부모라는 것, 그러나 자식의 아주 작은 반항에도 화를 내고 충동적으로 우울감을 표현하는 결코 범상치 않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심장 마비를 겪으셨어. 위중하신 상태인 것 같아.” 


남동생으로부터 에이미의 인생을 바꾼 그 연락을 받은 것은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부리나케 공중전화로 달려가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를 살려주세요. 맹세할게요. 엄마를 이번에 도와주신다면 엄마를 더 이해해보도록 노력할게요. 엄마의 삶에 대해 많이 여쭤보고 엄마의 모든 말을 경청할게요.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쓸게요.’ 전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신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에이미는 깨달았던 것이다. 엄마를 그저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존재로만 여겨왔을 뿐, 정작 엄마가 어떤 삶의 서사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윽고 전화 저 편에서 엄마는 너무나 태연하게 응답했다. “생선장수가 덤탱이를 씌우지 뭐냐. 열받아서 소리 지르고 있으니 가슴이 꽉 막히더라고. 의사 말이 스트레스로 인한 협심증이래. 나 멀쩡해” 하와이의 새파란 하늘에는 인자하게 핀 뭉게구름, 축축한 바람에 느리게 흔들리는 높은 야자수, 그리고 엄마가 계신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보였다. 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약속했다. 꼭 지켜야 해.” 


에이미가 엄마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낯선 이야기들이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예컨대, 엄마가 상하이 지역의 손꼽히는 부호의 손에서 컸다던지, 엄마의 엄마가 첫 남편을 여읜 뒤 부호의 4번째 첩으로 들어갔지만 수치심에 어린 나이의 엄마 앞에서 자살을 했다던지, 엄마가 에이미의 아빠를 만나기 전 중국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셋이나 두었다던지, 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그 전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던지, 그리고 남자의 방관 탓에 자식 하나를 잃었다던지,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그녀가 남은 자식 둘을 남겨두면서까지 전남편을 떠나야 했다던지 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이방인이 아닌 중국의 한 특별한 시대를 앓았던 젊은이로서의 서사였다. 그리고 그 서사를 이해하자 지금의 엄마가 더 뚜렷이 보였다. 왜 엄마가 그렇게 우울을 앓았는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왜 그리도 컸는지, 늘 엄마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희생’의 참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엄마의 고백 이후 에이미는 엄마를 모시고 중국에 갔다. 중국 곳곳을 여행했고, 엄마의 고향을 둘러보고, 자신의 이복자매들을 만났다. 그리고 맹세대로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갔다. 에이미의 데뷔작이자 그녀를 스타작가 반열에 올린 소설 『The Joy Luck Club』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녀는 엄마를 향한 자신의 시선의 변화와 엄마의 파란만장한 삶을 네 쌍의 중국계 이민자 어머니들과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성장한 딸들의 관계를 통해 성실하게 담아내었다. 아시안 문화를 오리엔탈적 판타지가 아닌 동시대적 아시안들의 삶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에 아시안 교포들이 환호하였을 뿐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복잡한 애정을 앓는 미국 전역의 수많은 자식들이 눈물을 흘렸다. 에이미의 엄마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이제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로부터 본인의 엄마를 떠올릴 만큼 그녀를 가깝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You look at me, but you don’t see me.” 


 『The Joy Luck Club』은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엇갈린 시선을 네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변주곡처럼 반복한다. 에이미가 처음으로 엄마를 ‘바라본see’ 순간, 이방인처럼 에이미의 삶을 겉돌던 엄마는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된 순간, 기적처럼 그녀에게 작가라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그녀의 역사였다. 






작가노트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한참 생각하던 중에 적어본 글입니다. 그리고 아기를 맞이한 지난 가을 9월 투룸매거진 21호에 글을 공개했습니다. 투룸매거진은 삶의 의미있는 변화를 일구기 위해 해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수많은 이방인을 위한 매거진이에요. 저는 <누구나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에이미 탄을 비롯한 뮤즈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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