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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밀려올 때, 나는 이렇게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by 크리터


최근에 큰 결정을 앞두고 ‘모든 것이 잘 안 되고 망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 몇 날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라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일 것이다.


이 같이 걱정이 많은 순간에 책 《도덕경》《바가바드 기타》는 나에게 한 가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준비한 것들이 설사 잘 안되고 실패하더라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그것이 단순히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늘 공존한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하나로 보며, 흙덩이와 돌과 황금을 똑같은 것으로 여긴다.” 《바가바드 기타》



“‘有無相生(유무상생)’ ‘難易相成(난이상성)’ ‘長短相較(장단상교)’ ‘高下相傾(고하상경)’ ‘音聲相和(음성상화)’ ‘前後相隨(전후상수)’ ‘모양이 있는 현상과 모양 없는 근원, 어려움과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맑은 소리와 탁한 소리, 앞과 뒤, 이런 것은 모두 상대적으로 동시에 생긴다.’” 《도덕경》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 같은 도교나 인도베다 철학은, 세상은 상반되어 있는 것들의 조화로 이뤄져 있는 통찰을 안겨준다. 서로 상반되는 음과 양,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늘 공존한다는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플러스와 마이너스,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 반대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왼쪽으로 100미터를 가도 오른쪽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른쪽으로 100미터를 가도 왼쪽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래로 아무리 깊게 파고들어도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의 위에 있다.

위로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의 아래에 있다.


아무리 행복을 추구해도 불행의 요소는 늘 존재한다.

아무리 불행해도 행복의 요소는 늘 존재한다.

이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불행을 피하려 하고, 그것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불행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거나 햇빛을 만끽하는 소소한 기쁨들을)


반대로, 우리는 행복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한다. 그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행복 속에서 불행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최신폰을 사고 느낀 기쁨이 얼마 가지 않아 일상에서 다른 불평거리로 대체되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어야 전자가 있을 수 있다.

위와 아래, 좌와 우가 있어야 방향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행복과 불행을 모두를 수용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이 가능하다.


《도덕경》의 핵심 철학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그것은 어떠한 순간이든 자연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라는 통찰을 제시해 준다. 내가 두려워하던 실패나 최악의 순간이 설사 벌어지더라도 그것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결국엔 지나간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를 통해 존재하고, 서로를 통해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모든 것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선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든 불행한 순간이든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삶에 상반되는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을 전부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그대의 다르마(Dharma)를 실행하라”는 말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여기서 다르마(Dharma)는 산스크리트어로 행위, 도덕, 신념 등을 의미한다. 그 말대로 자신의 기준을 갖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순간이 닥치거나 그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면 이를 수용하자. 삶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우리를 더 온전한 삶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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