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쩌다 데뷔

한국 초연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하여

by Ho jakka

나란 아이의 어린 시절에 대해 살짝 소개하자면, 나란 아이는 춤, 노래, 연기 중 춤이란 장르와 가장 먼저 친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중학교 때 춤을 추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또래 아이들과 춤으로 하나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팀을 이뤄서 백화점 댄스 경연대회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수학여행에서 전교생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군인이 된 나. 배우로서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내 인생 첫 번째 큰 고민에 빠졌다. 배우도 좋았고 춤도 좋았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인가, 뮤지컬 안무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나는 플레이어로서의 나 자신이 더 좋았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배우가 하고 싶었다. 특히 군 전역 후엔 배우가 되겠다는 열정과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으며 다녔는데, 심지어 나 자신을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전호준입니다.’라고 소개하며 학교 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OTR(배우들이 오디션 정보를 얻는 곳)을 통해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 초연 오디션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오예! '프랑스 뮤지컬은 특성상 싱어와 댄서가 나눠져 있는데, 그때의 난 ‘난 앞으로 배우를 할 거니깐, 내 춤의 절정기인 지금이야말로 댄서로 오디션을 볼 때야’라는 생각으로 댄서로 지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거만하기 짝이 없지만, 나름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기에 순수(?)했다고 토닥여본다.


오디션이란 것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1차는 대개 서류접수인데 서류에서 간단히 거르거나 나누고, 2차부터 정식 오디션이 시작된다. 나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2차 오디션에 참여했다. 사실 2차 오디션 때 오디션장에 들어가자마자 약간 주눅 들었었다. 발레리노로 보이는 몇 명이 타이즈를 입고 턴 대결을 하고 있었고(그중 한 명이 5바퀴를 돌았다), 다른 무리 중 한 명은 고난도의 현대무용 동작을 과시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거의 콩쿠르 준비 수준). 곧 이태리 출신의 '노트르담 드 파리' 안무자와 조안무가 들어왔고, 오디션 당일에 배워야 할 넘버 ‘우리는 이방인 부랑자들’에 대한 넘버(음악)에 대한 내용 설명을 해주고, 안무를 가르쳐주었다. 안무 자체도 약간은 까다로웠지만 안무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하고 새로웠다. '아. 역시 뮤지컬은 스토리인가?' 안무자들은 무엇보다도 춤 이상의 것. 우리에게 연기를 원했다. 한 마디로 이방인, 부랑자로서의 연기를 해달라는 거. 그들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몸으로 얼굴로 연기를 보여줬고, 통역사는 온몸으로 그 연기와 표정을 통역했다. (사실 오디션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고, 많은 걸 배웠던 순간이다.) 단체로 안무를 배운 후, 5명 정도 한 팀을 이뤄서 오디션을 봤다. 안무를 배운 기억은 있지만 안무를 한 기억은 없다. 내 차례가 끝난 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단 사실뿐. 드디어 내 인생의 첫 오디션, 첫 합격 발표의 순간이 왔다.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내 살 떨림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이태리 안무자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천후춘 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렇다. 내 이름이었다! 오디션장에서 땀 흘려 함께한 전우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힘이 풀릴 대로 풀린 다리를 질질 끌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봤는데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눈물이 펑펑 났다. 그러곤 읊조렸다. ’나 2차 붙었어.‘ 그렇다. 첫 오디션 합격이었지만 고작 2차 오디션이었다. 오디션은 이런 방식으로 3,4,5차 오디션까지 계속 진행되었고, 오디션 장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며 한 단씩 성장했고, 운이 좋게도 최종 합격을 하여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 멤버로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데뷔를 하게 되었다. 어쩌다 오디션 그리고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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