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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 jakka Jan 19. 2019

나는 실패한 배우다 - 1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배우는 배우면서 한다.


저도 대한민국 배우 중 한 사람으로서 이것저것 배우는 걸 즐기는데요, 이 글은 노래 레슨에 대한 제 경험담을 담았습니다. 슬픈 기억입니다. 특히나 이 글은 배우 지망생과 배우들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으며, 배우가 아닌 분들 중에도 취미로 노래나 운동, 춤을 즐기시는 분들께도 도움되길 바랍니다.


자. 상상해볼까요. 당신이 무언가에 투자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 액수는 일 회에 십만 원 정도. 그리고 그 기간은 약 십 년. 계산해보면 음. 꽤 큰 돈이네요. 제가 했던 투자는 바로 노래 레슨입니다. 1회 레슨비가 12만 원, 15만 원이었던 적도 있으니 1억이 넘는 돈을 노래에 투자했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그런데 그 투자 결과는요?


왜 노래 레슨에 투자했냐면요, 뮤지컬 배우를 꿈꿨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대답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로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의 코러스 녹음 오디션에 합격하고 코러스 녹음을 하며 ‘내가 노래에도 소질이 있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디션과 코러스 녹음을 주관했던 외국인 음악감독은 제 소리가 좋다고 했거든요. 아직도 그 음악감독의 눈빛과 미소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의 코러스 녹음과 초연 댄서 Dancer로 쇼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댄서 Dancer 였지만 코러스 녹음을 했었던 거죠. (참고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는 댄서Dancer 와 싱어 Singer가 분리되어 있는데,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저는 제 데뷔인 노트르 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에 제 모든 걸 쏟았더랬죠. 그리고 약 1년의 공연기간 동안에도 낮 시간을 이용해 노래 레슨을 꾸준히 받았습니다. 아. 이런 적도 있어요. 대구 공연 중, 월요일에 서울 올라와서 레슨 받고 다음날 대구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참고로 배우들은 월요일에 쉽니다). 그다음 공연, 캣츠 Cats에서도 배움과 공연을 병행하는 제 나름의 스케줄은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노래 레슨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래 레슨을 계속 받는 이유는 노래에 대해서 제가 절 믿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춤은 거울을 통해 내가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노래는 내가 내는 소리와 제삼자가 듣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게 제일 힘들었어요. 내가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10년이란 시간 동안 노래 레슨 받고 노래 연습하면서 실력이 늘긴 늘었습니다. 하지만 투자한 시간 대비 더디게 느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왜 난 안되지? 노력이 부족한가? 난 멍청한가? 재능이 없나? 등등 부정적인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자(?)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노래가, 노래란 놈이 정말 좋았기 때문인데요.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네가 날 배반해도 난 네가 좋아. 뭐 이런 느낌.


제 첫 보컬 선생님은 싸이월드를 통해 찾았던 싸이 선생님(가칭). 그분이 마침 공개 레슨을 하셨어요. 무더운 여름 날인 걸로 기억되는데요, 총 다 섯명이 신청했는데, 저 혼자만 왔다고 하더라고요. 암튼 그렇게 공개 레슨을 시작했고, 레슨을 받자마자 짧은 시간만에 소리가 탄탄해짐을 느꼈고, 태어나서 처음 내보는 음도 냈습니다. 하. 이. 씨. 노래하시는 분들은 이 음이 남자에게 얼마나 높은지 아실 거예요. 그 후에 싸이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대화도 잘 되었더랬죠. 결국 저는 이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사제지간도 돈독해졌고, 덕분에 연습실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께는 약 이 년반에서 삼 년의 시간을 배웠는데, 참고로 그때는 한창 무용 근육이 발달 해던 터라 잔근육이 많았습니다. 노래 레슨을 받으면 목은 물론이고 몸의 여기저기에 핏대가 서곤 했는데요, 제가 농담으로 ‘선생님 제 발성은 근육 발성입니다’라고 하면 선생님도 허허허 웃곤 하셨는데, 이게 첫 번째 문제입니다. 근육 발성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연습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노래가 날 배반해도 난 네가 좋아라는 마음으로 연습을 했는데, 한번 들어가면 두세 시간 정도는 기본이었죠. 이렇게 배웠지 저렇게 배웠지를 회상하며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댔죠. 연습실이 방음은 되어있었지만 로비까지 제 소리가 들렸었는데, 이게 두 번째 문제입니다. 피드백이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싸이 선생님은 제가 올바르지 않은 방법(잘못된 습관)으로 소리 내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진화와 발달, 심리학, 해부학을 연구하는 다이먼 연구소의 시어도어 다이먼은 책 [배우는 법을 배우기(The elements of skill)]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관념’이 잘못되어 있다면 학생에게 그 활동을 반복하게 하면서 특정 근육을 이완하라거나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라고 말한들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단순히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자신의 행위 ‘방식’에서 기인하는 해로운 영향을 극복할 수 없다.
교육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은 아이들을 계속 실패에 휘둘리게 만드는 가르침에 대한 무지다.
어떤 활동을 할 때 우리가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는 이 ‘감’이 또는 ‘맞다’는 느낌은 우리를 현혹시키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 노래를 배우는 많은 학생들이 노래하기에 잘못된 발성 방식을 결부시켜, 본인은 노래를 잘하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서투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노래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려면 노래 부르기와 관련이 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낯선 무언가를 해야 한다.
제대로 연주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 어려운 악절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사실 연주한다는 생각에 대한 습관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 반응 패턴에 비효율적인 움직임이 섞여 있다거나 생각과 동작 사이에 필요한 협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방식으로 피아노를 연습하게 될 것이다. 음계를 제대로 연주하겠다는 선의의 노력이 오히려 지성적인 연습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스윙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 상황은 설상가상에 빠진다. 무엇이 자신의 스윙을 이상하게 만드는지 알지 못하기에 학생은 아직 자신이 ‘제대로 된 동작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도 이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교사는 학생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패의 원인은 학생의 재능이나 능력 부족에 있다고 믿는다. 대개 교사는 학생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고 결국 자신이 학생의 스윙을 분석해서 교정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든 공을 향해 다가서면서 라켓을 휘두르고 다시 준비 자세로 되돌아오는 일련의 바른 동작 요소들을 끼워 맞춰 연습을 시키면 결국 학생이 동작을 제대로 해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접근 방식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는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균형과 협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제 실패 경험과 [배우는 법을 배우기(The elements of skill)]을 어떠셨나요? 사실 실패라고 말하기엔 아직입니다. 왜냐하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죠.  배우는 사람의 재능과 자질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사람(티쳐 또는 코치)의 티칭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더 중요하며, 선생님이나 코치가 그 방법을 모르더라고 배우는 본인 자신이 이런 원리를 알면 좀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훈련하고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처럼 시간과 돈 낭비 없이 꿈이나 취미에 가까이 갈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거지만 어차피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잖아요.(물론 어떤 경험이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죠).


당신의 꿈과 취미 안에서 더 자유롭게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싸이 선생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며, 그분을 깎아내릴 의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싸이 선생님과의 좋았던 경험도 많은데, 그중 최고는 그 선생님을 통해서 제가 음악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싸이 선생님께 레슨 받을 땐, 공연 후 집에 가서 오페라의 음악을 이리저리 찾아보곤 했었죠. 아. 그리고 레슨 전에 함께 마시던 에소프레소도 좋았던 추억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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