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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Dec 14. 2023

너 나 싫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 채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생각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나의 유년시절에 도착해 있었다.  


길 옆에 있던 우리 집 덕분에 마당은 늘 동네 놀이터가 되어 친구들로 왁자지껄했다. 그 당시는 아들을 많이 낳았기 때문에 동네에 여자애들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인 나도 나무 위 올라가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동네 냇가에 들어가 올챙이나 송사리 잡기 등을 하며 흙속에서 물속에서 하루종일 놀은 기억이 있다. 봄에는 산으로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먹든가 나무 위에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 경주도 했던 기억도 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뛰놀다 해가 산너머로 사라질 즈음 집집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던 기억도 있다. 

냇가에서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을 보고 하늘에 불이 난 줄 알고 놀랐던 기억도 있다. 

정말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었다.  

 

그때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시골에 사는 외가에 가는 게 자랑거리였다. 방학이 되자 며칠 후 도시에서 산다는 옆집 할머니댁 손녀가 우리 무리 속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얼굴도 하얗고 긴 머리를 곱게 땋아 끝을 분홍색 리본으로 예쁘게 묶었다. 그 아이는 여자애라곤 나밖에 없어서인지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인지 늘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너 말이야. 내가 싫으니?"라고 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 표정 때문에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결국 그 아이와 나는 친해졌지만 지금처럼 전화도 없던 시대였고 나도 도시로 이사를 와 영영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 친구는 잘 살고 있겠지! 


갑자기 이 친구가 떠오른 것은 '내가 싫으니"란 말 때문이었다. 직장 후배들과 워낙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나를 어렵게 생각한다. 평소 예쁘다 생각한 후배와 식사를 하다 후배의 생각이 궁금해 물었다. 

"내가 무섭니? 내가 싫은 건 아니지?"라고. 

그 후배가 뭐라 대답할지 예상하면서도 후배의 대답이 궁금했지만 결국 스스로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고 말았다. 속으로는 '기다릴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빨갛게 상기된 후배의 얼굴이 너무 귀여웠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어느새 2023년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순간에는 '내 사람'이 많은 걸 바라고 또 바랐지만 지금은 '내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각에도 여유가 스며들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지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오래오래 나누며 서로를 배려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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