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글에도 의미는 깊다.
두세 줄의 짧은 글이 긴 여운을 줄 때가 있다.
느슨해졌던 맘을 다잡아주고 스스로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마력이,
뭔가를 느끼고 깨달은 후 삶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힘,
때로는 아프고 버거울지라도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이.
'내일' '내일'하던 내가 어느 날인가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책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긴 문장보다는 짧은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지금도 책을 읽고 그 책 속에서 와닿은 문장을 만나면 행복하고 설렌다는 것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여 선생님이었다. 첫 조회시간에 우리의 독서량을 파악하셨다. 한 명씩 일어나 지금까지 자기가 읽은 책의 권수를 말하는데 한 친구가 300권 정도를 읽었다고 답했다.
여기저기서 놀라며 그 친구를 향한 부러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는 몇 권을 읽었다고 얘기해야 되나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선생님이 내 앞으로 걸어오시더니 나에게 물으셨다. 그러나 말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빨개진 내 얼굴을 잠깐 보시더니 재빨리 말씀하셨다.
'너무 많이 읽어서 생각이 나질 않는가 보다. 그럼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읽을 생각이니?'
이 또한 답을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른 친구에게 가시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답하지 못한 앞으로 읽을 나의 독서량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인데 300권 정도 읽었다는 그 친구 덕에 목표가 생겼다.
그 친구보다 더 많이 읽는 거로.....
그 후 나는 동화책, 위인전, 전래동화 등등 내 손에 쥐어지는 데로 읽으며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수많은 책을 만난 덕분에 지금도 책 속에 묻혀 산다.
한동안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 덕분에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시를 좋아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오빠 덕분에 글을 쓰며 행복해하고 있다.
친구야!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나에게 삶의 목표를 만들어 줬어.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