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은 세종시 보행교의 야경으로 '세종경찰청 이 효'님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더니 이른 아침부터 날이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전날 강하게 불던 바람 때문이었는지 오늘 아침에는 벚꽃이 많이 떨어지고 벚꽃나뭇잎 색이 연둣빛에서 녹색으로 짙어져 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무심히 창밖을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사람 참 맑네.'라는 말이 때로는 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철이 없다는 말로 들려올 때도 있다. 듣는 이마다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릴 테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꼭 여고시절의 나처럼.
난 여고에 입학하면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다니던 여중이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에 다시란 말은 좀 그렇다. 나란 애가 말이 없는 거지사회성이 떨어지는 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반에서는 제일 조용한 애가 나였다.
입학식이 끝나고 반이 정해지며 교회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강남제비가 되었다. 1학년 때는 부지런히 예배며 성가대에 참석하며 봉사활동도 하였다. 그 결과 2학년에 올라가면서 고등부 부회장이 되었다. 선배들 사이에서는 '초신자' 운운하며 반대의 말도 있었지만 결국 일 년 동안 고등부를 이끌고 갈 임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열심'이 남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정말 내가 맑아서인지 아니면 철이 없어서였는지 3학년 선배들로부터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선배를 막 대한다는 것이었다.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말대답하고 선배 말을 중간에 토막 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얘기를 해준 선배가 싫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많은 얘기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선배의 충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난 여전히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잘라가며 내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그때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보니 예전보다 더 생각이 많아졌다. 초기에 한 번 얘기를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정말 본인은 자신 때문에 누군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본인이 모른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 사람도 남의 얘기를 들을 나이가 아닌데. 그저 참고 모른 척 넘기는 게 현명한 것일까.
갑자기 '빵'하고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마치 정신 차리라는 충고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