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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래였구나.

by 금다요

우리가 이곳에 온 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이 앞을 걸어 다니는 사람도, 그리고 저 닫혀있는 문도 열리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부드럽게 느껴지는 하나의 팝송뿐.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곧 문 닫겠네."

"윤설! 그걸 왜 네가 걱정하는 건데? 영랑 씨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정민은 내 말이 웃겼는지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너 정말 기억 못 하는구나."

"그렇다니까. 아무래도 나 기억상실증인가 봐."

"웃기려 하지 말고."

정말이었다. 김영랑이란 저 남자는 내 기억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영랑 씨랑 얘기하다 보면 기억날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겠네. LP판이 저렇게 많은데 왜 이 노래만 계속 나올까?"

정민도 의아했는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윤설을 쳐다봤다.

"정말 그러네. 네가 얘기하기 전까지 나는 전혀 못 느꼈거든."

"넌 항상 뭔가에 꽂히면 주변이나 다른 거에는 도통 관심이 없잖아. 저 영랑 씨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빨리 얘기해. 무슨 사이야?"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녁 식사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자리를 옮겨볼까요?"

우리는 그를 따라 본채가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옆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오시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로 골라봤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자리에 앉자 그가 시계를 봤다. 갑자기 손끝으로 담너머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잠시후면 저기에서 아주 멋진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모셨는데 괜찮으시죠?"

"그럼요. 바람도 적당하고 주변이 너무 예뻐서 정말 좋네요."

"두 분 다 좋다니 준비한 보람을 느낍니다."


그가 만든 음식은 최고였다. 우리가 한가롭게 떠들고 웃는 동안 저녁놀은 하늘 저편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영랑 씨가 보여주고 싶은 게 저 저녁놀이군요."

시간은 밝은 낮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밤을 향해 고백하듯 하늘 저편에 색을 더하기 시작했다. 끝내 그리움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에 저녁놀이 가득한 하늘을 담았다. 정민은 내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영랑 씨도 보세요."


그는 내가 찍은 사진과 하늘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다시 보게 되다니. 지금까지 봐온 저녁놀이지만 살아 숨 쉬는 거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처럼 느껴진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는 술기운 때문인지 약간 흥분해 있었지만 솔직하고 따뜻했다. 그의 말속에는 뭔지 모를 아쉬움과 슬픔이 녹아있었다.

"영랑 씨! 이런 윤설이 보면 신이 참 불공평하지 않나 싶다가도 집에 처박혀 사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만해라. 귀 따가우니."

"두 분 이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저 불빛 때문에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니."


집안은 밖에서 보는 거와는 다르게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거실 한쪽 벽에는 책들로 가득했다. 익숙한 책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고개를 돌리자 마당에서 본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이라 그런지 공기가 맑아서인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릇들은 저 주세요. 앉아 계시면 차 준비해서 나올게요."

"영랑 씨! 차 말고 맥주 한잔 더해요."

"그럴까요?"

그는 돌아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책들이 꽂혀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책들 사이로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사진 속에서 보조개가 깊게 파일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내 머릿속 어딘가에 묻혀있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김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