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 터치

시간이 흐르듯.

by 금다요

사진 속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곁을 지나쳐간 듯한 많은 사람들을 등진채 닮은 꼴의 젊은 남자 둘이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나는 정민의 팔을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켜 소파 쪽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윤설이 쓰러지는 줄 알고."

"괜찮아요?"

그는 책꽂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난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대답했다.

"네. 발을 헛디뎌서."

그가 일어나 잠시 나를 살펴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의약품통을 들고 나왔다.

"지금은 놀라서 못 느끼겠지만 자다가 쑤실 수 있으니 응급조치를 하는 게 좋겠어요."


그는 의약품통을 열고 진통효과가 있는 스프레이를 꺼내 내 발목에 분사했다. 민트향이 코끝에 진동했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죠."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정민과 얘기하는 사이 그가 일어나 맞은편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많이 놀랐죠? 카페에서 말했어야 했는데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윤설 씨랑 오겠다는 정민 씨 전화에 고민이 많았는데 윤설 씨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도 하고."

"티베트에서는 언제 오셨어요?"

그는 대답대신 나의 표정을 살피는 듯싶었다.

"올초에 귀국했습니다."

"함께 귀국했나요?"

그는 대답대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또한 긴 슬픔을 견뎌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배는 아직도 내려올 생각이 없나 봐요. 그곳이 얼마나 좋길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며 가슴 한구석이 불에 덴 듯 아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아! 아직도 여기 있음 어떡해. 다른 애들은 다 호프집으로 달려갔는데."

"선배! 지금이라도 이번 에베레스트에 가는 거 포기하면 안 될까요?"

"학위수여식 때까지는 돌아올 거야. 그리고 부대장으로 가기 때문에 지금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럼 매일 전화해 줄 수는 있죠?"

"누구 명이시라고. 설아!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안전하게 잘 다녀올게.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네."


날이 가고 달이 바뀔수록 더 이상 그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의 소식을 접한 것은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켜진 뉴스에서였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던 대학연합 산악회 김인랑 부대장이 오늘 오후 하산하던 중 추락한 대원을 구하려다 갑자기 불어닥친 눈보라로 인해 계곡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구조에 나섰지만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수색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라는.


그날 이후 모든 게 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하고 싶었던 나의 일상이,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병원 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멈추었고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민 씨! 윤설 씨 데리고 올라가요. 그만 쉬는 게 좋겠어요."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자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끝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걱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정민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거 같았다. 몇 시나 되었을까! 엷은 커튼 사이로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든 거 같았다.



후드득후드득 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빗소리인 줄 알았는데 창밖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소리였나 보다. 아주 긴 잠에서 깨어난 거처럼 시계의 째깍거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시간들이 내 곁에 다가와 있을 줄은 몰랐다. 밤새 닫아놓았던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어제 우리가 달려온 좁은 시골길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하늘은 맑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내 기분을 눈치챈 거처럼 아침 햇살도 눈부시고.


마당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설 씨!"

정민은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조용히 거실로 내려가 마당으로 나가자 커피 향이 마당 가득했다.

"발목은 괜찮았어요?"

"네. 덕분에 아픈 줄 모르고 잘 잤어요."

그는 커피잔을 내 앞에 내려놓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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