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밖으로 나오자 나는 방향감각을 잃은 듯 이길 저길만 훑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을 벗어나서인지 그냥 집으로 들어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이런 내 맘을 눈치챈 정민이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차 가져왔는데 바람이나 쐬러 갈까?"
"뭘 물어! 알면서. 어디든 가보자."
정민은 운전석에 오르더니 목적지가 있는지 자기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너랑 같이 가고 싶은 데가 있었는데 네가 집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오질 않으니 계속 미루고 있었거든. 오늘에야 그곳을 가게 되네. 돌아오는 길에 너의 감상평을 들을 거니까 준비하시고."
"흠. 뭐야! 내 감상평이 필요할 정도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데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알지. 걱정하지 마. 대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면 윤설 너라도 안 봐준다."
"알았어 알았어. 어서 출발이나 하시지."
달리는 창밖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하늘은 높고 가을하늘처럼 파랗게 느껴졌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것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다 왔어. 내리자."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윤설! 지금 궁금한 게 많다는 건 아는데 몇 분만 참아주겠니?"
"그래. 알았다."
차에서 내려 5분여 걸어가자 길 옆으로 마을 분위기에 맞지 않게 이름도 없이 카페라고만 쓰여 있는 붉은색의 나무문이 눈에 들어왔다. 정민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자."
문을 열자 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브레이크 타임인지 비어 있는 테이블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곳 주인이 LP판을 올려놓고 자리를 비웠는지 아주 오래전 팝송이 흘러나왔다. 흠. 이곳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다니. 언제였지. 이 노래만 들었던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 tonight I celebrate my love. -
오늘 밤 나는 나의 사랑을 축하합니다.
생각에 젖기도 전에 출입구 반대편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느 곳에서 마주쳐도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미남자였다. 유난히 눈썹이 짙고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거처럼 생기가 있어 보였다.
"정민 씨!"
"잘 지냈어요?"
그 남자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잠시 흔들리는 거처럼 보였다. 금방 평정심을 찾았는지 악수를 청했다.
"김영랑입니다."
"윤설입니다."
인사하는 동안 노래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조금 전 흘러나왔던 그 팝송이 들려왔다. 정민이와 나는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창밖으로 넓은 마당이 보였다. 돌담 위에는 넝쿨장미들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다른 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정민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양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누구니?"
"너 정말 생각 안 나?"
"저 사람? 전혀 모르겠는데."
그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정민 옆에 앉았다. 정민은 그를 바라보며 맑게 웃었다.
"윤설이는 전혀 생각이 안 나나 봐요."
정민의 말을 들은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윤설 씨를 보는 순간 알았는데."
"흠. 제가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닌데 말이죠. 보는 순간 알았다니 정말 이상하네요."
정민도 그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재미있는 건지 내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정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따뜻했지만 왜 그런지 쓸쓸해 보였다.
"윤설 씨! 지금도 노래 부르시나요?"
"그걸 어떻게..... 정민이가 말했어요?"
그는 대답대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민 씨! 오랜만에 왔으니 저녁식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게스트룸에서 자고 내일 올라가요.
윤설 씨도 괜찮죠? 여기 아침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그는 우리의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카페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