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거리다.
정민의 울음은 비가 걷히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내 옆에서는 늘 씩씩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터라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정민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정민아! 무슨 일 있어?"
정민은 나의 물음에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지 고개를 들며 해맑게 웃었다.
"알았어. 더 이상 묻지 않을게. 그 대신 나한테 얘기하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얘기해야 돼. 알았지?"
"음."
우리는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닫혀있는 창 유리에는 얼룩이 가득했다. 빗줄기가 가랑비로 바뀌더니 집 앞을 지나가는 이들의 말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고요함을 깨고 정민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민은 한 손으로 배를 가리더니 멋쩍게 웃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랜만에 윤설 시그니처 먹어볼까?"
"쉬고 있어. 내가 맛있게 만들어놓고 부를게."
거실로 나왔을 때는 정민이 소파에 기대서 잠들어 있었다. 정민을 흔들어 깨웠다.
"정민아! 식사하자."
"미안.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네."
"피곤하면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눕지 그랬어!"
정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늦은 오후 늦은 점심식사를 마칠 때까지 말없이 서로의 감정을 살폈다.
"윤설! 그동안 내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잖아. 이제는 괜찮을 거 같아서."
"뭐가?"
"너 정말 괜찮아진 거지?"
"나 정말 괜찮아. 그동안 답을 찾지 못해 힘들었는데 영랑 씨를 만난 후 조금은 편해졌어. 고마워 정민아! 다 네 덕분이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너하고 연락이 안 될 때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혹시 네가 못된 생각을 하면 어쩌나 싶어서. 네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덜 걱정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면 하루 종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릿속에는 온통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차서 너무 힘들었어."
나는 정민의 얘기를 듣고서야 그녀 또한 나와 같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나 힘든 것만 생각하느라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할 거란 생각을 못했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의 밝은 모습을 다시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거 같아. 난 네가 계속 힘들어할까 봐 걱정했었거든."
"그럴 리가. 이제는 이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야지. 노력할게. 정민아!"
"그래. 꼭 그렇게 해줘."
비가 그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른 저녁처럼 날이 어둑어둑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더위도 가려나. 비가 오는데도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더위를 못 참는 정민은 결국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윤설! 컴퓨터 좀 쓰자."
"그렇지 않아도 너 때문에 게스트룸에 컴퓨터 설치했으니 편하게 쓰셔."
정민이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컴퓨터를 켰다.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이 들려왔다.
설국이 보낸 메시지였다.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려는데 다시 벨이 울렸다.
"윤설입니다."
"설국예요. 메시지 확인했죠?"
"지금 막."
"내일 윤설 씨 있는 곳으로 갈 테니 기다려요."
"내가 어디 있는 줄 알고."
"그건 내가 풀을 문제이니 정답 걱정은 하지 마시고. 도착해서 연락할게요. 내일 만나요."
"네."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가로등이 켜지며 집 앞이 환해졌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그동안 내 귓가에서 사라졌던 바람소리,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소리, 지나가는 차들의 클랙슨 소리, 그리고 내 두 눈가에서 멀어졌던 도시의 풍경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쳐가는 생각에 웃음이 담기자 행복하다는 기분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