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서.

동행.

by 금다요

계단을 내려오는 정민의 발소리가 들렸다.

"윤설! 나 지금 가야겠어."

"지금 간다고?"

"아침 일찍 계약 관련 중요한 PT가 잡혀있어서 시간 맞추려면 지금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도착하면 연락 줘. 과속하지 말고."

정민은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 난 또 혼자가 되었다. 대문을 닫고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무심코 바라본 하늘에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달빛이 점점 제모양을 찾아가고 있었다. 낮에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밤바람은 시원했다. 밤이 되면 낮에 들었던 소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춰버린다. 들려오지 않는 소리들을 찾는 마음이 커지다 보니 매일 쓸쓸함이 더해진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문밖도 조용하다. 거리가 잘 보이는 거실 창 커튼을 내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웠지만 금방 잠들지 못할 거 같았다.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동안 비공개로 돌려놓았던 블로그를 공개로 전환한 후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침대로 돌아왔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오늘 새벽에 또 비가 내릴 거라고 예보하더니 깊이 잠든 시간에 내리고 있었다. 거실로 나가 TV를 켜고 소파에 누웠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어느 지역 축제 홍보 영상에서 리모컨을 멈췄다. 인랑과 그곳을 여행하다 그의 권유로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함께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그는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아주 짧았지만 내 눈이 시려오도록 눈을 깜빡거릴 수가 없었다. TV를 끄고 커튼을 열었다. 비 때문인지 밖은 더 깜깜하게 느껴졌다.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 벨이었다. 정민이었다.

"내 전화 기다린 거야?"

"기다린 건 맞는데 연락이 없어 그냥 잠든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잠깐만 넌 자고 일어난 거야. 아님 잠 못 들고 있는 거니?"

"어쩌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네. 정민아! 너 아침 일찍 나가려면 잠깐이라도 자야지. 끊는다."

정민과 통화를 마치고 커피를 내려 방으로 들어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있는 동안 블로그에 올려놓은 짧은 글들을 확인했다. 일일이 정리하고 나니 창밖이 환해져 있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커피가 떨어져 주방으로 걸어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설국의 전화였다.

"윤설입니다."

"설국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요?"

"괜찮아요. 깨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아침식사 같이 하실래요?"

"아침 식사요?"

"네. 10분 후 설 씨 집 앞에 도착합니다. 다시 전화할게요."


그는 정확하게 10분에 도착했다. 그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가자 그가 차에서 내려 내게로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비 맞으니까 타시죠."

그는 조수석 문을 열고 내가 차에 오르자 문을 닫은 후 자신도 운전석으로 탔다. 차는 집을 벗어나 시외로 빠지는 강변도로로 들어섰다. 조금씩 비가 가늘어지더니 그치고 하늘도 맑아졌다. 높아진 기온 때문인지 안개가 짙어지면서 점점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좁아진 도로가 신경 쓰였는지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맘때면 여기는 늘 안개가 심해요. 길이 좁아지니 앞에서 오는 차를 못 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긴장해야 돼요."

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말없이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이 남자손 치고는 너무 하얗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나요?"

"도착했어요.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보이죠?"

그는 이곳이 아주 익숙한지 짙은 안개를 뚫고 어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자 그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잡아요. 넘어지면 안 되니까."

"괜찮아요. 잘 따라갈게요."

그는 나를 보고 웃더니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손이 참 따뜻하네요."


누군가 앞에서 그를 불렀다.

"국이니?"

"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에게 한 손을 잡힌 나까지 덩달아 걸음이 빨라졌다. 걸음을 멈춘 곳에는 내 나이 또래쯤 보이는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잡은 손을 놓으려 하자 그는 더욱 세게 힘을 주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남자를 따라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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