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뢰.
거실로 들어온 사이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메마른 땅의 열기가 바람에 섞이더니 거실 안까지 흙냄새가 가득했다. 나뭇잎들도 비를 맞아서인지 생기를 찾고 있었다. 금방 그칠 줄 알았던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지더니 불어오는 바람소리까지 심란했다. 하늘은 먹구름을 가득 담은 채 천둥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밖은 점점 깜깜해져 갔다. 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설! 네가 전화를 다 걸고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디야?"
"오늘 처리할 일이 쌓여서 꼼짝 못 할 거 같아."
"그렇지 않아도 비가 무섭게 내려서 오지 말라고 전화한 거야."
"알았어."
정민과 통화를 마치고 커피를 내려 창옆에 앉았다. 커피 향이 코끝에서 맴돌다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커피잔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임을 무섭도록 깨닫곤 했다. 가장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영랑을 만난 후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고 싶은 기대감이 꿈뚤거렸다.
몇 시나 되었을까! 인터폰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민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오며 투덜댔다.
"장마철도 아닌데 무슨 비가 무섭게 온대!"
"처리할 일이 있으시다더니!"
"완벽하게 처리하고 왔지. 차에서 내려 잠깐 걸었는데 다 젖었네."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와."
"그럼 그럴까!"
정민이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윤설! 오늘 하루 종일 대청소한 건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 좀 치웠지."
정민이 이상하다는 듯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그래. 이렇게 갑자기 빛의 속도로 변하면 내가 무섭지."
"놀리지 말고."
"윤설! 혹시 설국한테 전화받았어?"
"음. 그런데 네가 설국을 어떻게 알아?"
"난 모르지. 직접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영랑 씨가 얘기한 적이 있었어."
"영랑 씨가?"
"음. 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아주 친밀한 사이처럼 느꼈거든. 그런데 말이야. 넌 설국을 어떻게 만난 거니?"
갑자기 대낮처럼 환해지더니 천둥번개가 휘몰아쳐 정민의 말이 작게 들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 벼락이 떨어진 거처럼 가깝게 들려왔다. 정민도 놀랐는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설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나는 정민에게 소브루에서의 일을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지만 거기서 설국을 만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영랑 씨한테는 말하지 마."
"오늘 나 자고 간다."
"언제는 그냥 가고?"
정민은 웃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 벨이 울렸다.
"윤설입니다."
휴대폰 액정의 전화번호는 설국의 것이었다. 정민이 기댄 몸을 일으키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설국입니다."
"네."
"내일 귀국하는데 우리 만납시다."
"귀국하면 시간하고 약속장소 주세요."
"좋아요."
설국, 그의 전화를 끊자 정민이 더 호들갑이었다.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틀린 거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밤이 되자 빗줄기는 다시 가늘어졌다. 그래서인지 낮의 열기는 사라지고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정민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