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걸음마.

by 금다요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볼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창밖 멀리 어딘가를 바라봤다.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는 보리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위를 날아가는 새들도 보였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고양이 여러 마리가 우리가 앉아있는 창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창안에 있는 우리가 보이는지 유리창에 두발을 얹고 야옹 거렸다. 그 귀여움에 뛰는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대답대신 밝게 웃었다. 그도 나의 미소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옆으로 다가와 내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의 두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그런 그를 보며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게 더욱더 기뻤다. 그를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익숙함이 느껴졌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거처럼 내 안의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신이란 여자는 참 이상해. 냉정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성적인 나를 자꾸만 흔들고 있으니."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그의 두 눈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우리를 안내했던 이가 들어왔다. 그 또한 밝게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어요?"

"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형! 정식으로 소개할게."

"드디어 네가 바라던 데로 되었구나. 정말 잘됐어. 축하한다. 설민입니다."

설민은 기뻐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잡으며 나를 소개했다.

"윤설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우리는 설민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그는 보리밭 옆 넓은 공터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더니 조수석 쪽으로 걸어왔다. 차문을 열자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불어오는 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흔들자 그는 쟈켓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의 머리를 묶었다. 그는 기분이 좋았는지 가곡 '보리밭'을 흥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남성적이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물었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에서 오래 살았어요?"

"그 집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오랫동안 고민해 설계하고 짓기까지 했거든요. 거의 완공될 때쯤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손재주가 많군요."

"난 설국씨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거 같아요. 가령 설국씨는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며......."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그럼 만날 때마다 하나씩 알려줄게요."

그의 말에 내가 웃자 그는 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길을 걸었다. 보리밭 반쯤 지났을까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오랫동안 신발장에 보관해 두었던 하이힐을 무리하게 신고 나온 탓인지 발바닥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다. 조금씩 발을 절룩거리자 그가 걸음을 멈췄다.

"미안해요. 미처 당신이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많이 아프죠?"

"괜찮아요. 그동안 신을 일이 없다가 오래간만에 신고 나왔더니 적응이 안돼서."

그는 일어나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당신!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요? 흠! 당신 발이 이렇게 고생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이쁘긴 했어요."

나도 그의 말에 따라 웃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걸읍시다. 여기서 기다려요. 차 가지고 올게요."

"같이 가요. 이런 방법도 있으니."

나는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 들고 맨발로 길 위를 걸었다. 그는 나의 돌발행동에 놀라는가 싶더니 신선했는지 그도 구두를 벗어 들고 걷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혹시 유리조각을 밟을지도 모르니."

"괜찮아요. 누가 업어주지 않겠어요?"

"아! 그 방법이 있네요. 내가 업어줄까요?"

"네?"

그와 웃고 떠드는 사이 세워놓은 차까지 걸어왔다. 그가 차문을 열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 그도 운전석으로 올랐다.

"그동안 여기를 차로만 지나다녔거든요. 오늘 처음 걸었어요. 보는 내내 누군가와 걷고 싶었거든요."

나는 그의 말에 말없이 미소를 지은채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쳐다봤다. 그리고 오던 길을 달려 변화한 시내를 지나 집 앞에 오자 그가 차를 세웠다.

"오늘 낮동안은 많이 바쁠 거 같아요. 전화할게요."

"네."

내가 내리자 그가 탄 차는 지나가는 차량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잘한 거겠지?'

발바닥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얼음찜질을 한 후 침대에 누웠다. 그와의 일이 꿈을 꾼 거처럼 느껴졌다. 전화벨 소리에 일어났다. 정민이었다.

"일은 잘 끝냈어?"

"그럼! 내가 누군데. 오늘 뭐 할 거니? 우리 회사 근처로 올래? 내가 맛있는 밥 살게."

"안타깝지만 오늘은 안돼. 집에서 정리할 게 좀 있어서."

"알았어. 그럼 저녁에 봐서 가든가 할게."

"음."

정민과의 통화를 마치고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 폴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폴더를 열자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파일 이름이 없어 클릭하여 열자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찍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계단을 내려가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밝게 웃으며 누군가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영상이 조금 더 진행되자 학교 교정에 서있는 건 정민이었다. 그리고 정민이 뒤로 좀 떨어진 벤치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 화면을 정지시킨 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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