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이상하리만치 달리는 차들도 많아 보이지 않았다. 말이 없어진 내가 이상했는지 그가 고개를 돌렸다.
"피곤하죠? 의자 뒤로 젖히고 자요. 도착하면 깨울게요."
"눈꺼풀은 천근만근인데 기분은 좋아요."
정말이었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 미소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름 내내 그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서일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데도 산들의 색이 달라 보였다. 그가 나의 생각을 끊어내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비가 오면 안 되는데......'
멀리 산봉우리에도 군데군데 낮은 구름이 보였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오며 날이 어두워졌다. 정면 유리에 빗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하더니 굵은 빗방울이 라이트 불빛에 반사되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깜빡 잊고 있었어요."
그의 걱정에 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옛일이 생각나네요. 아주 오래전 소나기를 흠뻑 맞고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무섭게 화를 내신 적이 있었어요. 감기 들까 봐도 걱정되셨겠지만 빨랫감도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날은 우울했지만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고 내 몸에 닿았던 비의 느낌이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우리가 도착할 때쯤 날이 환하게 개여 있을지도 몰라요. 가을 햇살과 마주할 수도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전 우울해하던 그의 표정은 사라지고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을게요. 당신과 모처럼 긴 시간을 함께 하는데 비가 와서 실망했거든요."
"얘기했잖아요. 비 오니까 더 좋다고."
깜빡 잠들었었나 보다. 차문 닫히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휴게소였다. 밖은 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에 비친 그의 하얀 와이셔츠는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그가 생수와 커피를 들고 차 쪽으로 걸어왔다. 운전석 문을 열자 그가 웃으며 차에 올랐다.
"깨어 있었어요?"
"네."
내가 어색하게 웃자 그가 말했다.
"바람 쐴 겸 밖으로 나갈까요?"
그가 한 팔로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게 전해졌다.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던 연인인 듯 보이는 한쌍의 남녀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힐끔거렸다. 벤치에 앉자 그가 커피 뚜껑을 열어 내 앞에 내밀었다. 커피 향이 코끝에서 짙게 맴돌았다.
"비 때문인지 커피 향이 훨씬 짙네요."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오래전 혼자 산티아고에 갔었어요. 출발할 때는 순례자가 된 양 거창했는데 생각은 사라지고 오래 걸어야 하니 커피 생각이 간절하더라고요. 우연히 걷다가 만난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를 마셨는데 맛과 향이 남다르던지. 그때 깨달았어요. 좋은 커피는 맛과 향이 깊은 거처럼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그의 얼굴을 스쳐가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어느 시간 속 홀로 견뎌내야만 했던 아픔이 복잡하게 얽힌. 나는 커피잔을 들고 말없이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일어날까요?"
나는 그를 따라 차를 향해 걸었다. 우리 차는 휴게소를 나와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달리는 사이 비는 굵어졌다 약해졌다 반복했지만 남해에 도착했을 때는 더 많은 비와 세찬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그는 길옆에 차를 세우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는 통화를 마치고 해안 도로를 달렸다. 거친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 절벽에 부딪히자 하얀 포말이 산산조각 났다. 그는 나의 손을 잡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충전이 필요해요."
"자리 바꿀까요?"
그는 잡은 손을 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 방법도 좋겠지만 이 손이면 돼요."
얼마나 달렸을까 그는 해안과 맞닿은 카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주차장 끝으로 걸어가자 검푸른 바다 위에는 파도가 높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로 갈매기가 갈 곳을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걸음을 옮겨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한산했다. 식사시간이 지난 뒤라 그런지 날이 좋지 않아서인지 빈테이블이 많았다. 카페 주인은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 옆 테이블로 안내했다. 카페 주인은 그의 메뉴 주문이 끝나자 돌아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바다의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금방이라도 우리가 앉아있는 이곳까지 파도가 들어닥칠 것만 같았다. 그는 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웃으며 나를 불렀다.
"윤설 씨......"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자 그는 고개를 숙여 나의 콧등을 튕겼다.
"무서워요?"
"네.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아 무서워요."
말이 끝나자 내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손을 내밀어 나의 얼굴을 그에게로 향하게 했다.
"당신이 무서워하면 안 되지. 식사 취소하고 나갈까요?"
"아니에요. 저기 봐요. 사장님이 주방에서 저렇게 우리 음식 만들고 있는데 나갈 수 있겠어요?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지금 너무 배고파서 움직일 기운도 바닥났어요."
그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은 내일 아침에 출발해도 되는데 당신과 함께 오고 싶었어요. 우리는 비와 인연이 많은 거 같아요. 식사 마치고 신나게 날궂이 한 번 해볼까요?"
"좋아요."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카페 주인이 브런치가 담긴 캐리어를 밀고 우리 자리로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