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음에.

선물 같은 시간.

by 금다요

그는 상기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촉촉하게 젖은 그의 두 눈 속에는 설렘 가득한 내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스쳤다. 그가 나의 차가운 손을 잡자 그의 체온이 나에게 전해지며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은 채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며 제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울타리 밖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자 어둡던 거리가 밝아졌다. 정원 위 하늘은 흐르는 구름이 반쯤 드리워진 달과 별 하나가 우릴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땅 위에 뜨거운 기운을 내뿜던 계절도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밤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내가 가늘게 몸을 떨자 그는 나의 어깨를 감싸며 먼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하얀 손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손등의 붉은 핏줄이 더욱 짙게 보였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지금 이 시간이 꿈같아요. 어느 날 혼자만 남게 되었어요. 그날이후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의 따뜻함으로 아침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 눈을 뜨면 혼자라는 게 너무 무섭고 쓸쓸해 눈을 감은채 그냥 있었어요. 그러다 깜깜해지면 밤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이곳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어요."

"절대로 꿈 아니에요. 나 봐요. 지금 내가 당신 옆에 있잖아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늘 당신 옆에 내가 있을 거니까."

"고마워요. 그 긴 시간을 넘어 다시 찾아와 줘서."

그는 내 어깨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웃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미소가 눈부시도록 환했다. 그는 기대어 있는 나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을 너무 안고 싶지만 오늘은 인내심을 발휘해야겠어요.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 되었나. 아침 일찍 남해에 내려가야 해서."

"남해는 무슨 일로......."

"내가 내 얘기를 너무 안 했죠? 남해에서 돌아오면 우리 얘기할까요?"

"좋아요."

그는 여전히 나의 손을 잡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일정 있었으면 말하지 그랬어요."

"아니 내가 못 기다렸을 거예요."

집 밖으로 나오자 그는 운전석에 올라 차 시동을 걸었다.

"잘 자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를 배웅하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오래전에 작업하다 중단한 폴더를 찾아 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다 지우다 다시 쓰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훅 불어오는 아침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빈 커피잔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뜨겁게 커피를 내려 거실로 나왔다.


인터폰 소리에 놀라 현관으로 가자 문밖에 그가 서있었다. 문을 열자 그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뛰어들어왔다.

"남해 안 갔어요?"

그는 휑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구두를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밤새웠어요?"

"네. 갑자기 작업할 게 생각나서."

"함께 가려고 달려왔는데. 이런 상황일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미리 연락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놀라게 하려 그냥 왔죠. 나 커피 한잔 마시고 있을 테니 당신 준비하고 나와요."

그는 주방으로 걸어가다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샤워 같이 할까요?"

내가 가늘게 눈을 흘기자 그는 기분 좋게 큰소리로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커피 향이 가득했다. 그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는데 정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유리창을 두드리자 그가 일어나 안으로 들어왔다.

"깜짝이야. 조금 전 여기서 만났었는데 그 윤설 씨 어디 갔나요?"

"지금 나 놀리는 거죠?"

"전혀. 내가 원하는 모습이예요."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출발해야겠어요. 여기 더 있다가는 오늘 출발 못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