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이별.
창밖 멀리 보이는 하늘의 저녁놀은 오늘따라 선명한 색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어둠이 짙어지며 모두가 밤의 시간 속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와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장롱을 열었다. 농안 끝에 비닐에 씌어있는 검은색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엄마 아빠 장례식 때 입었던 정장이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 태울까 싶었지만 죄인의 수의(壽衣)처럼 느껴져 감추듯 장롱 깊숙이 넣은 채 잊고 었었다. 검은색 정장을 꺼내 비닐을 벗기고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하얀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방금 꺼낸 쟈켓을 위에 입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때로 돌아간 거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생각난 듯 분홍색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른 후 살짝 휴지로 찍었다.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정민이 도착해 있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가자 정민이 차 유리창을 내리고 불렀다.
"윤설!"
조수석으로 오르자 방향제 향이 코끝에 와닿았다.
"방향제 바꿨어? 향이 짙네."
"어제 바꿨는데 새 거라서 향이 짙은가 봐."
정민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 차 시동을 걸었다.
"괜찮지?"
"음."
정말 괜찮다 생각했는데 우리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말없이 자기 생각에 빠져 정면만 응시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건물을 향해 걸었다. 설민과 그가 입구 한쪽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 우리를 봤는지 담배에 붙인 불을 끄고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정민이 인사를 하자 설민은 입가에 미소만 살짝 짓고는 나에게도 눈인사 후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숨이 멈출 거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향냄새가 복도에 차 있었다. 영안실 앞에는 각계에서 보낸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었다. 영안실로 들어가자 그의 쌍둥이 형제인 영랑과 마지막 등정을 함께 했던 대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제단 위에는 생전에 선배가 좋아했던 꽃들이 가득했고 꽃 사이로 선배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선배는 사진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맑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민과 나는 준비해 놓은 국화로 예를 올렸다. 영랑과 인사를 한 후 영안실을 나오려는데 영랑이 정민의 팔을 잡았다. 복도로 나오자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발인까지 볼 거죠?"
"그래야 할 거 같아. 저쪽으로 갈까요?"
"네."
그를 따라 자리를 옮기자 상위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정민이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설민이 그를 불렀다. 그가 일어나 복도로 나가 설민과 얘기를 나누더니 아예 밖으로 나가는 거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밤이 깊어지자 문상객들이 줄어들었다.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영랑이 걸어왔다. 영랑의 표정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았지만 하지 않았다.
"와줘서 고마워요."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생각들이 뒤엉켜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그가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정민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자 우리에게 달려왔다.
"발인하고 전화할게요."
그는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내 팔을 세게 잡았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는 나의 등을 토닥이더니 돌아서 병원 안으로 사라졌다. 정민은 집 앞에 도착하자 같이 있어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윤설! 내가 같이 있어줄게."
"나 괜찮다니까. 내일 출장 가야 한다며. 갔다 와서 얼굴 보자."
정민을 보내고 현관문을 열자 초겨울 바람이 휙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한참을 창 옆에 앉아 멍하니 정원의 나무들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선배. 지금이라도 돌아와 줘서. 선배가 꿈꾸던 것들 지금부터는 내가 이어갈게요.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담 위에는 매일 밤이면 찾아오는 길냥이 한 마리가 두 발을 모으고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눈과 마주치자 눈을 깜빡거리며 위로하는 거처럼 말을 걸어왔다. 잠시 후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가 울자 담을 내려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저장해 놓은 인랑 선배의 사진 폴더를 열었다. 먼저 떠난 이를 위로하기 위한 보내는 이의 예의라 생각했다.
'선배! 오늘만 아니 이 시간만 슬퍼하고 내일부터는 많이 웃을 거예요. 오늘은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하지만 내일은 선배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며 잘살아볼게요. 나를 찾아줘서 고마웠어요."
눈물이 그치지 않을 거처럼 흘렀다. 꺼억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내 목을 타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잘 가요."
날이 밝아오는지 창밖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어제 입었던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오랫동안 타지 않았던 차의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