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슬픔까지.

by 금다요

멀리 작은 산 위로 동쪽 하늘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창을 내리자 찬바람이 차 안으로 훅 들어왔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을 지나가는 차의 클랙슨 소리에 놀라 창을 반쯤 올리고 다시 도로 위를 달렸다.


오늘따라 도로는 한산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호수 때문인지 새벽안개가 밀려와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신호등 색이 바뀌길 기다리며 웃옷을 벗어 조수석에 던져 놓고 시계를 봤다. 장례식장에서도 출발했을 시간이었다.


인랑 선배의 영원한 안식처는 전에 정민과 함께 갔던 영랑이 머무는 곳과 가까운 오래된 사찰 비망사(備忘寺)였다. 형제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선배의 부모님과 주말이면 찾던 곳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창밖으로 가로수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도로 옆 가게에 들러 커피와 빵을 사 차로 돌아왔다. 라디오를 틀자 태풍이 우리나라 인근 지역을 지나가 전국적으로 강한 바람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였다. 커피 한 모금을 입안 깊이 몰아넣고 도로를 달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비망사가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 산 언덕에 차를 세웠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산책을 나왔는지 중년부부가 힐끔 거리더니 자기들 갈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래된 고목들 사이로 버스 한 대가 시골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버스 뒤로 승용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있던 웃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비망사로 들어오더니 선배의 영정과 유골함을 뒤로 문상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영정 속의 선배는 여전히 밝은 얼굴로 자신을 배웅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웅전을 지나 납골당이 있는 건물로 하나둘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선배를 향해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차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문상객들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가 먼저 출발했다. 영랑과 설민, 그리고 그가 주지스님과 차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주지스님은 합장한 채 예를 올린 후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영랑과 설민이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영랑이 먼저 차에 올랐다. 설민도 그와 얘기하더니 영랑의 차에 올랐다. 그는 그들이 탄 차 가까이서 한참을 서있더니 손을 들어 그들을 배웅했다. 그는 혼자 남자 대웅전 뒤로 걸어가더니 얼마 후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정자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는 생각난 듯 웃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내 휴대폰이 울리며 액정에 그의 이름이 떠있었다.

"네."

그는 내가 있는 언덕을 돌아봤다.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거기 있는 거죠?"

"네."

"이쪽으로 와줘요."

나는 전화를 끊고 그가 있는 비망사로 향했다. 스치는 나무들의 휘어짐이 거셌다. 태풍이 경로를 바꿨는지 어린 나무들은 뽑힐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차로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가 정자에서 일어나 차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주차할 자리를 가리켰다. 차를 주차하자 그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았다.

"잠깐 올라가서 인사하고 갈까요?"

"네."

그는 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선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선배가 있는 곳에 이르자 고개를 돌려 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 잠깐 주지스님 뵙고 올게요.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요."

"네."

그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선배의 유골함을 바라봤다. 선배가 웃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뛰어올 것만 같았다.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입구 담에 기대 눈을 감은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는지 그가 걸어왔다.

"갈까요?"

"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말없이 걸었다. 잡은 손을 놓더니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운전할게요."

"피곤할 텐데 내가 할게요."

"오랜만에 차 꺼낸 거 같은데 이 목숨 맡기기에는 영 불안해서......."

"뭐라고요?"

그는 차키를 빼앗더니 재빠르게 운전석으로 올랐다. 그는 나의 안전띠를 잡아당겨 매 주고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키는 내가 가졌으니 이제부터는 내 맘대로 할 거예요. 당신은 무조건 따라와요."

"무서워라. 나 지금 납치당한 거예요?"

"납치라고 하기에는 좀."

그는 차 시동을 걸고 빠르게 비망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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