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넘어.

슬프도록 아름다운.

by 금다요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설민이었다.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인지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윤설 씨! 여기서 뵙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설민은 그의 등을 치며 눈을 맞추더니 말없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벌거숭이가 된 나무는 부는 바람에 떨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바다는 수면 위 하얀 포말이 귀찮은 건지 해변 가까이 밀어내고 있었다. 창 가까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다 보니 저런 일도 있구나. 얼마나 추웠을까! 저렇게 발견되기도 하네.>

나는 그들이 나누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가 돌아왔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웨이터가 빈 그릇을 치우고 주문한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나갔는데도 말없이 커피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가 돌아왔어요."

"그러뇨? 누가 돌아왔다는 거예요?"

나는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인랑 선배가 돌아왔나요?"

"며칠 전 영랑 형이 연락받고 출국했었는데 오늘 새벽에 함께 귀국했다고 해요."

나는 말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룸에서 나올 때 내가 손에 채워준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먼저 올라가야겠죠? 당신이 어떻게 할지 몰라 민형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얼굴색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에요. 일 마칠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때 같이 올라가요."

"그럼 형 먼저 올라가도록 할게요."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회의까지 마치려면 몇 시간 걸릴 거예요. 끝나면 전화할게요."

"알았어요."

그는 다가와 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방에만 있지 말고 산책이라도 다녀와요."

그가 방을 나가자 정민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 했는데 네가 먼저 연락했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일어나니? 너 괜찮은 거지?"

"놀랐지만 괜찮아. 선배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어디야? 아직도 바닷가야? 오늘은 올라오는 거지?"

"음. 올라가서 다시 연락할게."

"기다릴게."

나는 정민과 통화를 마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다가 보였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나를 힐끔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 낯선 곳이었기에 일렁이던 맘이 편안해졌다. 차가운 모래사장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가 익숙해진 갈매기들이 내 주변을 서성이다 아무 반응이 없자 바다 위로 돌아가더니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선배는 왜 지금 돌아와야만 했을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하얀 물거품이 발밑까지 밀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등뒤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밑의 모래를 차는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겁이 났다. 지금 이 해변에는 나 혼자만 있었기 때문에.

"바람도 차가운데 지금까지 여기에 있었어요?"

그의 목소리였다.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봤다.

"비 올 거 같아요."

나도 그를 따라 하늘을 쳐다봤다. 머리 위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일은 끝났어요?"

"네. 갑시다."

그는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았다. 파랗게 얼은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밀어 넣고 내 걸음을 재촉했다. 모래사장을 벗어나니 그의 구두는 모래먼지 때문에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그는 휴지로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그의 차를 향해 걸었다. 차에 오르니 호텔 룸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는지 내 가방이 실려 있었다.

"식사는 올라가면서 휴게소에서 간단히 하죠."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를 향해 말없이 미소 짓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인가! 내려올 때도 비가 오더니 올라갈 때도 비가 오네."


차가 멈추었다. 잠들었었나 보다. 그는 운전대에 몸을 기대고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스럭거리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깼어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잠들었었나 봐요. 그런데 여기가 어디쯤이에요?"

"당신이 곤하게 잠들어 일부러 안 깨웠어요. 10분 후면 당신 집 앞에 도착할 거 같아요."

"그렇게 오래 잤어요?"

"코까지 골면서 자던데. 하하하........"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그가 나를 놀리느라 일부러 농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자 차는 다시 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침묵만이 차 안에 가득했다. 우리가 탄 차는 골목으로 접어들더니 집 앞에 도착했다. 단 하루 비웠는데도 아주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회사에 들렀다가 올 테니 기다려줄래요? 같이 형 보러 가죠."

"정민이랑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