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편안(便安)하신가요.

어느 날의 소회(所懷)

by 금다요

# before


'고요한 밤'을 기대하고 퇴근했는데 일찌감치 포기해야겠다. 한 시간 넘게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 우리 집은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뉴스에도 가끔 보도되는 층간 소음 때문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남편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이 집으로 들어오며 <사람들이 어찌 그리 배려심이 없는지.> 혀를 찼다. 자기도 이런 상황이 속상했나 보다. 윗집에서는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기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남편은 낮에 일이 많았었는지 바로 잠들었다.


- pixabay - 아파트 -


천장을 바라보는데 시골에서 살던 때가 생각났다. 낮에는 조용하다 밤만 되면 천장이 자기네 운동장이라도 되는 양 '찍찍' 거리며 사정없이 이리저리 내달리던 서생원(鼠生員- 쥐를 의인화해서 속되게 이르는 말)들. 밤새 그 소리가 들려와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시끄럽다 싶으면 미리 준비한 나무 작대기로 천장을 툭툭 칠 뿐이었다. 그럼 잠깐 동안은 잠잠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잠은 달아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도 힘들어 어둠 속에 앉아있었다. 누군가 자동차 클랙슨(klaxon)을 잘못 눌렀는지 우리 집까지 들려왔다. 이어서 항의라도 하는양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비속어를 섞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안으로 불어와 화분에 심어놓은 율마의 끝을 흔들고 코끝에 향만 남긴 채 어디론가 도망가버렸다. 조금 전 큰 소리가 생각나 밖을 쳐다봤다. 가로등 불빛에 아파트 옆 인도에 서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酒)님의 독실한 신자로 거듭났는지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가로수 앞에 버티고 서 삿대질까지 해가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가로수를 두 팔로 껴안았다 나 혼자 그 모양을 보고 있으려니 웃음이 나오다 못해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경비 아저씨와 아내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 남자를 부축하고 사라졌다.



# after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야간 근무하며 직원들이랑 시켜먹은 피자 때문인지 갈증이 심해졌다. 먹으면서도 다른 날보다 짜다 싶어 정수기 앞을 왔다 갔다 했는데 집에 와서도 짠맛이 가시질 않아 시원한 우유 한 잔 마시고 나니 견딜만해졌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깜박 잠들었는지 휴대폰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과의 아침식사 시간에는 한밤중에 일어난 에피소드(episode)가 주제였다.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남편도 남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요즈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와서 그런지 내가 말하는 '주(酒)님의 독실한 신자'를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pixabay - 커피. 원두


남편이 마실 헤즐럿 커피를 내린 후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헤즐럿 커피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옷을 갈아 입고 지하 주차장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남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다시 한번 쳐다봤다. 분명 그 남자였다. 비속어를 섞어가며 가로수에 욕을 퍼붓던 어제의 그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 보였다.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그 남자는 남편 말대로 '어제 낮에 기분 상한 일이 있었나' 생각되었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힐끔 쳐다봤다. 내 표정이 어색했는지 그가 웃으며 <안녕하세요! 출근들 하세요?>하고 말했다. 남편이 <네. 출근합니다.>하고 답을 하자 그 남자는 남편과 몇 마디 나누더니 지상으로 올라갔다.


남편 옆으로 다가가 <그 남자야.>라고 속삭였다. 남편이 나를 쳐다보며 <정말 그 남자 맞아?>하고 물었다. 급기야 남편은 <자기가 잘못 본 거 아냐?> 하는 거였다. 내심 정말 내가 잘못 봤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의 오른쪽 뺨에 살짝 긁힌 자국이 있었으니까. 또 마주치게 된다면 물어봐야겠다.


< 오늘은 편안(便安)하십니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