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느끼다.

안에서 보다.

by 금다요

저 새들은 늘 창밖에서 지저귀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소나무 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돌림 노래하듯 주거니 받거니 재잘거렸다. 내 귀에는 분명 천국의 소리처럼 들려오는데 다른 이들도 공감할지는 모르겠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릴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유연근무일이라 그런지 출근한 이가 없었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 할 필요도 없고 격식을 갖출 필요도 없었기에 실내화를 신은채 테라스로 나갔다. 이런 날 테라스에서 마시는 모닝커피는 선택받은 자의 권리처럼 누리는 즐거움이 컸다. 마치 꽃 향기가 가득한 아침에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 진한 커피향에 취해본다.


이 테라스도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자주 이용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커피 한 잔 하자'라고 권하면 따라 나올까 지금은 그 직원 조차 사무실에 없어 나올 일이 별로 없었다. 높은 곳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pixabay - 도시의 풍경. 황혼


이렇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아름다운 풍경도 창(窓)을 통해 보거나 카메라 앵글(camera angle)을 맞춰 보는 것과는 느끼는 온도가 다를 거라 생각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런 거 같다. 때로는 상대방의 이미지만 갖고 그 사람을 판단할 때도 있지만 한 번 두 번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기준이 서게 된다. 교만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첫인상을 갖고 상대방을 빠르게 판단할 때가 있다. 친절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으로.


그러나 처음 만나도 상대방에게서 좋은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말투나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그렇다. 지금은 드문 일이지만 허세를 부리거나 반말로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내 곁에서 사라져 줄 때까지 고문을 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생각 또한 다 맞는 거는 아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여자들의 말다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에게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아주 오래전, 대원 한 명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봉걸레를 빨고 있어 <세면대에서 봉 걸래를 빨면 어떡하느냐>고 지적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어디서든 빨아가면 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애를 잡느냐.>고 말했다. 대원이 있어 잠자코 있었더니 대원이 눈치를 보며 봉걸레를 빨아 재빠르게 사라졌다.


이때다 싶어 <대원 앞에서 그게 무슨 말이니. 여기는 얼굴을 씻으라는 곳이지 봉걸레를 빠는 곳이 아니잖니.>하고 언성을 높였다. 후배는 <언니의 말이 다 정답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고 말하고는 뒷모습을 보이며 자기네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정해진 룰은 없었다. 봉걸레를 세면대에서 빨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선배도 아닌 후배한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당장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동안은 늘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말을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면대 건도 대원이 봉걸레를 세면대에서 빨고 있는 것을 계속 지켜봤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 봤던 후배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후배의 말 한마디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후배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룸'에 대하여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 이후에는 어떤 일이나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더욱더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한다. 나의 답이 정달일 수도 있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기에.


일란성쌍둥이도 제각각이라는데 하물며 남인데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어리다고 나이가 너무 많다고 밀어낼 게 아니라 '함께' 누리도록 따뜻한 시선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ixabay - 정물화